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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또 다른 면모 고스란히..‘ 완역 난중일기’
'난중일기' 최초 완역 노승석 교수 "충무공의 7년 일기 해독하는데도 7년 걸렸죠"/소년조선
 
서울신문 기사입력 :  2010/04/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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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또 다른 면모 고스란히…‘교감 완역 난중일기’
【교감 완역 난중일기】 노승석 옮김 민음사 펴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中日記)’가 국내 최초로 완역됐다. 400여년의 시간 동안 묻혀 있던 을미년(1595) 일기가 새로 햇빛을 봤고, 기존 판본에서 오역됐던 부분이 새로 수정됐다.

임진왜란 발발 석 달 전인 임진년(1592) 1월1일부터 시작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무술년(1598) 11월17일까지 쓴 ‘난중일기’ 자체의 가치는 현 시점에서 따져보더라도 최고 수준의 종군기록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긴박한 진중에서초서로 흘려쓴 기록이기에 정확한 해독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교감 완역 난중일기’(노승석 옮김, 민음사 펴냄)는 한학자이자 초서 연구가인 노승석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교수가 2004년 문화재청이 초고본을 판독하는 문화재 디지털정보화 사업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7년에 걸친 대역사(大役事)의 결과물이다.   노 교수는 교감학(校勘學)의 창을 통해 그동안의 미해독 글자들을 모두 해독했고, 기존 판본의 인명과 지명 등 오류 100여곳도 바로잡았다. 교감학이란 고증학의 하나로 경전의 문장, 문자 등의 오기(誤記) ·오전(誤傳) 등을 다른 책과 비교 대조하여 바로잡는 학문 방법이다.  

 2008년 ‘재조번방지초(再造藩邦志抄)’라고 알려진 ‘충무공유사’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난중일기’ 판본에서 누락된 32일치 일기를 발견했다.  

 

 특히 그동안 전서본만 전해 오던 ‘을미일기’의 일기초가 노 교수의 작업을 통해 발굴된 점은 의미가 깊다. 전황을 중심으로 기술된 ‘난중일기’의 대부분 내용과 달리, 새로 발굴된 기록은 개인의 감상과 가정사 중심으로 적혀 있다.  

 

권율, 원균 등에 대한 평가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순신의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민음사는 “이번에 펴낸 ‘난중일기’는 초고본에서 문맥과 문헌을 참고해 91건을 바로잡았고 전서본으로 29건, ‘난중일기초’로 3건, 새로 발견된 일기초로는 58건을 교감·수정했다”며 “교감한 원문을 전부 수록하고 세심한 주석도 달았다”고 설명했다. 3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조선시대 ‘공신’들의 출세 비결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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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인터뷰] '난중일기' 최초 완역 노승석 교수 "충무공의 7년 일기 해독하는데도 7년 걸렸죠"

 

입력 : 2010.04.25 16:32




100여곳 오류 바로 잡아
원문에 가장 가깝게 풀이
충무공 정신은 '일심과 효'

“충무공은 7년간 난중일기를 쓰셨고, 제가 그것을 해독하는데 7년이 걸렸어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일심(一心)’을 수결(手決·사인)로 썼던 충무공 이순신의 초지일관(初志一貫)됨이 이런 것일까. 대학원 시절부터 이순신 장군에 빠져 지냈던 40대 학자는 “충무공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 인품에 매료된다”고 했다. “장군의 필체엔 중후하면서도 웅장한 인품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전쟁 중 초서체로 급하게 쓴 탓에 그걸 해독하는 데는 정말 어려움이 많았어요.” 난중일기 첫 권인 임진일기 영인본을 펼쳐든 그의 얼굴엔 고생스러웠던 세월만큼이나 보람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최근 난중일기 최초의 완역본을 출간한 노승석 교수(순천향대 이순신 연구소)를 제465주년 충무공탄신일(4월28일)을 닷새 앞둔 지난 23일 만났다.

▲ 노승석 교수는 “이순신 장군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에서 슬기롭고 헌신적인 대처로 나라를 지킨 위대한 인물”이라며 “이러한 생각이 난중일기 해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노 교수 앞에 놓인 책은 이번에 펴낸 난중일기 완역본이며, 모형배는 조선시대 대표 전투선 판옥선(왼쪽)과 거북선이다./아산=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난중일기 최초 완역본 출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간 해독되지 못했던 글자들을 모두 해독하고, 자잘한 명칭이나 인명, 지명 등 100여곳의 오류를 바로 잡아 초고본 원문과 원뜻에 가장 가깝게 풀이했다는데 있어요.”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나왔습니까?

“을미일기(1595년)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충무공의 인간적 면모가 흥미롭습니다. 충무공은 권율 장군에 대해 ‘전쟁 중 군사작전을 수행하면서 상부에 보고한 내용이 상당히 기만적’이라고 지탄합니다. ‘그렇게까지 하고 어떻게 원수의 자리에 둘 수 있냐’며 직접적인 비난도 마다않지요. 원균에 대해선 ‘천지간에 이렇게 흉악하고 거짓된 자가 없다’며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충무공을 연모한 한양 기생 내산월(萊山月)이 거북선을 만들 때 금괴를 바친 사실도 눈길을 끕니다.”

-조선시대에도 난중일기에 대한 해독작업은 있었습니다. 왜 400여년 전의 해독이 더 정확하지 않았을까요?

“난중일기 해독작업은 정조 때 비로소 진행됐어요. 하지만 판독작업이 매우 부실했어요. 조선시대엔 무신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고, 충무공이 문신으로 관직에 나갔지만 무신으로 이름을 알렸기에 그가 남긴 글 역시 대접을 못 받았다고 볼 수 있어요.”

-‘인간 이순신’은 어떤 인물입니까?

“상황에 맞는 능숙한 리더십을 가졌지요. 인정이 많고, 동정을 할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을 베풀 줄 하는 인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 군율엔 엄격했어요. 난중일기에는 잘못을 저지른 병사들의 목을 벴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온 국민이 비통함에 빠져있습니다만.

“치밀한 계획 하에 군사를 움직였던 충무공이 이번 사건을 보셨다면 세심한 대비를 하지 못한 걸 개탄스러워 했을 겁니다. 철저히 원인을 밝히고, 문제가 있었다면 엄격한 책임 추궁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겠지요.” 

-‘충무공의 정신’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일에 항상 몰두하고 집중하는 정신입니다. 수결로 쓰신 ‘일심(一心)’을 봐도 알 수 있지요. 또 다른 하나는 ‘효(孝)’입니다. 충무공은 지극히 효심이 깊은 분이셨습니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의 근원도 바로 ‘효’에서 비롯됐지요.”

-충무공에 대해 더 밝혀야 할 사실이 있나요?

“충무공의 유년시절이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게 없습니다. 사실 위인전 내용은 흥미를 위해 쓰여졌을 뿐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요. 또 이순신 장군의 개인문집이라고 할 수 있는 저술이 없다는 점도 의문입니다. 이를 찾아내는 게 앞으로의 연구과제이지요”

-옛 문헌에 대한 정확한 해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자가 쓴 원뜻을 알기 위한 거지요. 그게 바로 역사입니다. 역사의 기록엔 한치의 거짓도 들어가선 안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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