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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왜 식민지로 전락했나
꼬레아 러시-100년 전 조선을 뒤흔든 서양인들 / 이상각 지음/효형
 
문화일보 기사입력 :  2010/08/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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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은 왜 식민지로 전락했나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 2010-08-13 14:33
꼬레아 러시-100년 전 조선을 뒤흔든 서양인들 / 이상각 지음/효형

“한국인은 대단히 명석한 민족이다. 그들은 스코틀랜드식으로 말해 말귀를 알아듣는 총명함을 타고났다. 외국인 교사들은 한결같이 한국인의 능숙하고 기민한 인지 능력과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탁월한 재능, 나아가 중국인과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훨씬 더 좋은 억양으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 여사가 1890년대 이 땅을 여행한 체험을 담은 저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밝힌 내용이다. 비숍 여사는 한국인을 ‘매우 잘 생기고 체격도 매우 큰 멋진 인종’으로 묘사했다.
책은, 구한말 이 땅을 방문한 서양인들을 추적함으로써 격동하는 역사적 장면들을 장식한 그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하고 있다. 100여 년 전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한국인의 편에 서서 일제의 폭압에 맞서 싸운 언론인 매켄지와 베델 등이 있고, 선교사 헐버트 같은 은인도 있었다.

차가운 외교관의 시선으로 한국의 비극을 지켜본 프랑스 공사 프랑댕과 러시아 공사 베베르, 미국인 외교 고문 샌즈 등도 있었다. 한국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을 사랑한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과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도 잊을 수 없다. 제중원의 설립자이며 미국 영사로 활약한 알렌, 세브란스병원 설립자 에비슨의 행적을 좇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반면 개항 이전 도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통상을 요구한 오페르트나 불확실한 자료를 이용해 한국 전문가 행세를 한 그리피스, 일제의 주구가 되어 한국인을 모욕한 통감부 고문 스티븐스 같은 인물도 빠뜨릴 수 없다. 특히 한국인의 처절한 읍소에도 제국주의의 비정한 심장으로 일본의 한국 병탄을 승인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그리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실무자 윌리엄 태프트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감내해야 할 진실이다.

100여 년 전 이 땅에 상륙한 서양인, 그들의 참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함포 소리로 지축을 흔들며 다가와 개항을 강제하고, 호시탐탐 이권 획득과 주권 강탈을 노린 제국주의자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청진기와 주삿바늘로 새 생명을 선사하고, 성경과 십자가로 새 하늘을 꿈꾸게 한 조선 근대화의 벗이었을까.

이 책을 통해 구한말 대한제국이 어떤 국제적 역학 관계의 터널을 지났는지 그리고 그 종착지가 어째서 일제의 식민지라는 암흑의 구렁텅이가 됐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아울러 일제에 의한 국권피탈 100년을 맞는 오늘날 우리가 새로운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속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를 다시 한번 숙고하게 한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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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 비숍
 



이사벨라 버드 비숍(bishop, isabella bird ; 1831-1904)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지리학자.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이 실려 있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체험과 관찰을 통하여 19세기 말 한국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비숍 여사는 1894년부터 1897년에 이르기까지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11개월에 걸쳐 현지 답사를 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1832년 영국 요크샤州 보로브릿지 홀에서 출생 했다. 23세 때부터 작가이자 지리학자로 활동했다. 1904년에 사망할 때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조사하고 연구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 영국 여성들의 우상적 존재였다. 그녀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897년 사이 네 차례 조선을 방문했다. 11개월간은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주한 시베리아 지 방까지 찾아가는 답사여행을 했다. 
 
버드 여사가 돌아가서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 ours)은 1898년에 나왔고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11판까지 찍었다고 한다 . 머리글에서 버드 여사는 「나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내가 여행 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곧 청일 전쟁 동안 한국의 운명들을 깨달으면서 이 나라에 대해 참으로 강렬한 흥미 를 갖게 되었다. 또 시베리아의 러시아 정부 아래 있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현황을 보았을 때 나는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더욱 큰 가능성에 대해 눈 을 크게 뜨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이 나라가 처음에 안겨주는 찝찝한 인상들을 잊어 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을 지 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썼다.

 
 버드 여사는 이 책의 맨 마지막 文段에서 한국을 떠날 때의 기분을 이렇게 적었다.
 <내가 처음에 한국에 대해서 느꼈던 혐오감은 이젠 거의 애정이랄 수 있는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섭섭하 게 헤어진 사랑스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나는 가장 사랑 스러운 한국의 겨울아침을 감싸는 푸른 벨벳과 같은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눈 덮인 서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다음날 영국 정부의 작은기선인 상 하이行 헨릭 호를 타고 무자비하고 엄혹한 북풍에 실려 제물포를 떠났다. 헨릭 호가 강 위로 천천히 증기를 발산하며 움직일 때, 예스러워 흥취 있는 한국의 國旗(국기)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회와 의문들을 자아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도 서울에 살면서 사람들의 무례함과 도시의 번잡함에 짜증내어 온 많은 서양인들이 떠날 때는 100년 전 버드 여사가 느꼈던 식의 아쉬움을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 사이의 이런 괴리는 아마도 한국인들의 人情과 재미있는 성품, 즉 한마디로 定義할 수 없는 생 동하고 이중적인 면에 매료된 때문일 것이다.
 
시베리아 한국인의 놀라운 가능성
비숍의 취재기는 기자와 작가의 능력을 겸비한 결과물이다. 100년 전의 한 국인 모습을 이 책만큼 사실적으로, 또 사례 중심으로 생생하게 전해 주는 책은 달리 없다. 철저한 체험과 관찰 및 실증주의에 기초한 위대한 기록정 신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사실을 기초로 한 분석과 예언이니 만큼 신뢰가 가는 것이다. 그녀가 한국의 절망적인 수탈구조를 고발할 때는 분노와 동정 을 동시에 표출한다.
 
「艱難(간난)에 견딜 줄 아는 강인하고 공손한 민족이 살고 있고, 거지 같 은 극빈계층도 없으며 풍요한 연안 자원도 있는」 한국의 잠재력이 관공서 의 부패와 부정으로 해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데 대해서 비숍은 안타까워 한다. 그녀는 한국의 문제를 기본적으로 제도의 문제로 본 것이다. 민중속 으로 깊게 들어가 본 비숍은 점차 한국민이 가진 저력을 깨닫게 된다. <불행히도 한국 국민의 잠재된 에너지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중산층이 진 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 않다. 중산층이 그들의 에너지를 쏟을 숙련된 직업이 없다.
 
한국은 특권계급의 착취, 관공서의 가혹한 세금, 총체적인 정의의 不在(부 재), 모든 벌이의 불안정, 대부분의 동양 정부가 기반하고 있는 가장 나쁜 전통인 非(비)개혁적인 정책 수행, 음모로 물든 고위 공직자의 약탈 행위 , 하찮은 후궁들과 궁전에 한거하면서 쇠약해진 군주, 가장 타락한 제국 중 의 한 국가와의 가까운 동맹, 흥미 있는 외국인들의 서로의 질투, 그리고 널리 퍼져 있으며 민중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미신, 자원 없고 음울 한 더러움의 사태에 처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한국의 첫인상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한국의 바다에 땅에 가난에 견딜 수 있는 국민 속에 있음을 보았다.
 
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단지 두 계급, 즉 약탈자와 피약탈자로 구성되어 있다.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 계급, 그리고 인구의 나머지 5분의 4인 문자 그대로의 「하층민」인 평민계급이 그것이다. 후자의 존재 이유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시베리아 韓人들의 의연함
비숍은 한국인들이 이주해 가서 살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遠東(원동 )지방의 한국인 정착촌도 방문했다. 여기서 비숍은 새로운 한국인을 만난다. <나는 여행자들이 내가 이곳의 한국 가정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온화한 친 절과 더 깨끗하고 더 안락한 편의시설을 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 각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이 있다. 한국 남자들의 기풍이 미묘하지만 실제적인 변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곳의 한국 남자들에게 는 고국의 남자들이 갖고 있는 그 특유의 풀 죽은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토착 한국인들의 특징인 의심과 나태한 자부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노예근성이 주체성과 독립심, 아시아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영국인의 것에 가까운 터프한 남자다움으로 변했다. 활발한 움직임이 우쭐대는 양반의 거 만함과 농부의 낙담한 빈둥거림을 대체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고 만다린이나 양반의 착취는 없었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은 번창하는 富農(부농)이 되었고 근면하고 훌륭한 행실 을 하고 우수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로 변해갔다. 이들 역시 한국에 있었으 면 똑같이 근면하지 않고 절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했다 . 이들은 대부분 기근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배고픈 난민들에 불과했었다. 이들의 번영과 보편적인 행동은 한국에 남아 있는 민중들이 정직한 정부 밑 에서 그들의 생계를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천천히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에게 주었다>
 
   한국인이 朝鮮朝的(조선조적)인 정치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원래 가진 잠재력대로 크게 발전하게 될 것이란 비숍 여사의 예언은 1945년 이 후 대한민국에서 결실되었다. 한국인의 야성을 짓누르고 있던 조선조와 日帝의 압력이 해제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자 한국사람들의 에 너지가 대폭발했다. 특히 해외로 뻗어나가는 민족의 힘이 이 발전을 先導(선도)했다. 가장 뛰어난 名文은 예견력을 가진 글이다. 지나간 일을 근사한 문장으로
 
   그리기는 쉽다. 과거는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정확히 豫見하는 데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자가 소개한 대표적인 대예언-崔南善의 해양화론과 비숍의 여행기가 바로 그런 작업 끝에 나온 글이다.
 
조선은 거대한 빨래터
   서양인의 눈에 비친 100년전 조선의 모습은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기록 곳곳에는 그들이 조선에서 느낀 악취, 더러움, 혐오스러움이 매우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그들은 조선인이 입고 다니는 순백의 옷이 더더욱 신기했던 것이다.
 
   서울의 성벽 안쪽을 묘사하는 일은 어쩐지 피하고 싶다. 나는 베이징을 보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고, 사오싱의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냄새나는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거대 도시이자 수도로서 서울의 위엄을 생각할 때 그 불결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1894년)
   한국 사람들은 과음하는 관습이 유난스러워서 주정뱅이들이 보이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 내가 한강을 여행하며 관찰한 결과로는 취해버리는 것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 품위를 떨어 뜨리는 일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곡주를 마신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를 짐승으로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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