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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노무현'우상싸움은'자살행위'
진보언론의 노무현 찬양, '3류 최루영화'/각골명심
 
대자보 기사입력 :  2009/06/0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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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 노무현' 우상 싸움은 '자살행위'
[각골명심의 時代獻辭 ②] 조작된 신화는 정치실종, 민중민주주의 세워야
 
각골명심
노무현 우상화에 동원된 '추상적 구호'들

▲ 박정희와 노무현 전 대통령     ©

이 글을 시작한 다음날, 민주당 지지율이 드디어 5년 만에 한나라당을 역전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습죠. 한때 노무현을 향해 사인펜조차 지운다는 초강력 지우개를 치켜들며 모든 탓을 그에게로 돌리던 그 바리새인들이 결과적으로 이 추모 정국의 최대 수혜자가 되고 있는 이 아이러니한 현상 안에 사실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모든 논지가 압축되어 있습죠.

즉 이미 '정책적으로 실패한 노무현'을 '인간성' 운운하며 감상적 포퓰리즘(populism)으로 '우상화'한 이후의 결과라는 것이 장·단기적 전망 어디에도 절대 '민중의 이익'이나 '정치를 정치답게' 하는 순행의 역사로 귀결될 수 없다는 것을 나 같은 필부라도 감히 나서서 엄중히 경고하고 싶은 겁니다.

그럼에도 '노무현 실패'를 말하면, 지금 분위기 좀 탔다고 물불 안 가리고 삿대질하며 감정적으로 나오는 노빠들은 어디에나 꼭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들 보고 박정희 추종세력 못지 않게 '맹목적 추종자들'이라 비웃어 왔다는 점도 꼭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지금 당신들이 그의 시체를 딛고 그를 우상화하는 구호들은 하나같이 '민주주의', '서민정치', '지역주의 청산', '국민통합', '정치개혁', '권력분점' 등등 추상적 구호들에 머물고 있는데, 이런 구호들이 모두 그의 시대에서 정치적으로 구현이 된 것인가요? 물론 그렇지 않죠. 적어도 구호가 가치로 인정받으려면 현실에서 그걸 구현해 냈을 때에야 비로소 그런 소릴 들을 수 있는 거죠. 좋은 말이야 어느 정치인인들 못합니까? 

박정희 망령과 싸워 온 30년

이쯤하고 논점으로 계속 가보죠. 잘 아다시피 남한의 민주공화정 역사라야 이제 불과 환갑 나이에 턱걸이할 정도에 지나지 않죠. 그리고 그마저도 다시 '민주 대 반민주'로 나눠보면 아직도 사춘기에 한창 방황끼 남은 틴에이저의 미숙한 나이 어디메쯤이죠.

고로 어떤 분들은 나이가 상대적 우월로 작동하는 한국 사회의 정서에서 이 정도나마 굴러가는 것도 대단한 거 아니냐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합리적 입장에서 보자면 꼭 나이가 능력을 결정짓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할 터이니 언제까지 찌질하게 나이 팔며 변명이나 해대지 말고 민중 생존권 차원에서라도 제발 정치를 정치답게 하는 길을 좀 찾아보자는 겁니다.

들여다 보면, 한국 정치는 짧은 민주주의 역사만큼이나 그 구도 또한 참 허접하기만 했죠. 볼까요? 박정희 이전 십여년이야 한마디로 똥 오줌 못 가리던 혼돈의 실험기라 언급할 가치도 없고, 박정희 이후 올해가 꼭 삼십년짼데 이 30년은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순전히 박정희 망령과 싸워 온 30년이라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죽은 공명과 산 중달의 싸움' 같은 박진감이나 극적 두뇌게임(전략, 전술) 같은 것도 별로 없었어요. 내용적으론 말이죠. 그저 두 개의 우파로 나눠서 "넌 '독재'해, 난 '민주'할께." 딱 이 수준에서 뒷구녕으론 사이좋게 서로의 등 두드려주고, 앞으론 함께 배 불려 왔던 반민중적 역사의 반복이었습죠.

네. 그렇습니다. 한국 정치사 60년 몇 장 몇 절 어느 페이지에도 당연히 페이지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어도 모자랄 '민중 위한 정치'라는 정치 본래의 합목적성에 부합하는 '정치원론'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겁니다.

물론 가진 입이라고 '말의 성찬'들이야 정치인이라면 마치 필수 립서비스 항목인양 늘 있어 왔지만 말입니다. 정말 화나지 않습니까? 아무리 운명적으로 피지배계층이라지만, 밑바닥에서 맨날 아둥바둥 벌레처럼 밟혀가면서도 어려울 때마다 몸빵, 눈물빵, 쌈짓돈빵에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주며 '한량이네 국부네' 그렇게들 떠받들어 줬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꼬라지란 말입니까.

'민주주의=자유주의' 변종 하나로 버티다

애초에 출발이 잘못됐어요. 구한말 찌질한 조상들 좀 많이 둔 탓에 공화정과 군주제를 객관적으로 비교해볼 기회조차 상실하고 그저 힘의 논리에 의해 미군으로부터 강제로 이식된 이 나라의 '민주공화정'이란 제도가 박정희라는 희대의 폭군을 만나면서 '민주주의'라는 것이 막연히 쟁취해야 될 절대 가치의 추상적 개념으로서만 민중들에게 이해되었고, 그 중에서도 유독 '자유'라는 한 개념만 또 따로 떨어져 나와 마치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인양 이 나라 정치 영역의 주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해 옴으로써 '민주주의=자유주의'라는 기이한 변종 하나로 몇 십 년을 울궈먹으며 내려 온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이겠죠.

그러다 보니 민중들은 자유만 획득하면 민주주의의 모든 것이 자연히 획득될 거란 첫번째 착각을 했고, 이는 '자유 쟁취'의 맨 앞줄에 섰던 자들이 곧 '민주주의의 화신'이란 두번째 착각으로 빠져들게 했었던 거죠. 요즘 와서 흔히 '87체제의 한계'로 지적되는 달랑 '직선제' 하나와 맞바꾼 '6.10 민주화 운동'이 결국 '잃어버린 10년'의 결과로 귀결된 것은 결과론적으로 어쩌면 그 당시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되었던 노정된 길이었는 지도 모릅니다.  

즉 '노동'(민중의 삶)이 배제된 타협이란 것이 갖는 한계성은 결국 '또 다른 자유주의자들의 득세를 의미할 뿐'이란 것을 그 당시는 대다수가 직관해내지 못했었다는 거죠. 그 결과 '민중 없는 정치=정치 실종'이란 이 혐오적 악순환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고, 동시에 이는 억울하게도 진짜 '좌파'들을 이땅 어디에도 발붙일 곳 없는 부랑아 신세로 전락시키고 말았습죠.

노동운동하면 빨갱이가 되는 나라, 도대체 이 나라 말고 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이런 환경이 '노동운동의 음성화'를 조장하고 민중의 요구가 실질적으로 정치에 아무것도 반영되지 못하게 한 혐의가 다분하다는 면만을 지적하며 이 노동 문제는 나중에 별도로 다뤄보겠습니다.

단 한 가지 노무현 시대에 평가할 점이라고 한다면, 그의 시대를 통해 이제 많은 사람들이 비로소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양대 주류세력들의 정책이란 것이 거의 '차이점이 없다!'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게 해준 열린 '체험판'을 깔아줬다는 점 아닐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본래 지향하고자 하는,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쟁취해 내야 하는 '민중민주주의'로의 이행에 있어 매우 소중한 체험이 된 것임에 분명합니다. 더불어 노무현이 집권 초기에 시도했던 '정치개혁'의 가장 큰 핵심이 '3김 청산과 지역주의 극복'에 있었다는 것은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좋은 의제였고 이는 앞으로도 '민중민주주의' 역사로 가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핵심 과제임에 분명합니다.

우스꽝스런 좌파·우파론, '노무현 민중후보'까지 등장

그럼 다시 본래 논점으로 돌아가서 우상화와 기득권의 함수관계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이 한국 사회에서 '좌파'니 '우파'니 말들은 많지만 이게 마치 '고무줄 널뛰기' 꼴이 된 우스꽝스런 이면을 지적하고 가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니까 전신을 포함해 한나라당은 입만 열면 민주당 보고 '좌파'라고 하는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는 곧 '박정희 반대파'와 동의어 이상의 아무 의미도 아닙니다. 그리고 민주당 역시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본래 좌파와 우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체성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들이 서로를 향해 (절대 무지해서가 아닌) 이런 헛소리를 의도적으로 남발하는 건, 다분히 이들의 '기득권 지키기'와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적당한 긴장', '팽팽한 전선' 유지가 얼마만큼 대중들에게 이들의 존재가치를 거듭 환기시켜 주는 좋은 기제이며 나아가 각자의 지지자들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유효한 수단인지를 이들은 체험적으로 아주 잘 깨달아 왔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함으로서 진짜 좌파들이 감히 정치판에 얼씬거리는 위험성을 최대한 배제해 냄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정책의 한계점이나 변별력 자체를 아예 비교조차 해볼 수 없게 하는 부수적 효과도 상당한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에휴, 이런 정치판의 구조적 문제들을 들여다 보노라면 은근히 좌빨로선 좀 화나는데 잠깐 막가 볼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럽니다. 다 노무현 덕에 그나마 오늘날 좌빨들이 의정사상 최초로 국회도 진출하고 지금 몇 석이라도 유지하게 된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저 헛웃음만 나오는 이런 아전인수식 (덕담인지 악담인지 모를) 자가당착적 해석에 이 땅의 좌빨들은 참 속도 좋은가 봅니다. 인간적으로 애도하는 거야 뭐랄 사람 없지만, 찾아가서 한다는 소리가 "노무현 민중후보 만세!"나 불러제끼는 정신 나간 좌빨들도 있다니 말입니다.

적어도 밸이 있는 좌빨 앞에서라면 저런 헛소린 당근 싸대기 맞아도 싼 소립죠. 도대체 지들끼리 꽃놀이패 다 들고 보수·진보 놀이 즐기며 희희낙락 놀아날 땐 언제고, 다 말아먹고 나니 왜 욕은 엄한 좌빨들이 다 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저 죄라면 쪽도 못 쓰는 몇 석 가진 죄로 선불 맞은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다 보니 돌아오는 건 '데모꾼'에 '과격한 놈들'이란 오물덩어리, 똥덩어리 다 뒤집어쓰고 사는 죄밖에 없는 좌빨들한테 '진보가 나라 말아먹었다.'는 없는 누명까지 뒤집어씌우다니 참 뻔뻔함에 치가 떨릴 일입죠.

치맵니까? '4대 개혁입법' 성공하라고 몇 달 동안 밤잠도 못 자고 밀어줬는데 어처구니없이 깨갱하더니 민노빨들이랑은 딴나라보다 더 먼 건널 수 없는 강이니 바다니 어쩌구 하면서 딴나라당에 연정 편지 띄우며 살랑살랑 꼬리칠 땐 언제고, 참 후안무치에 낯짝들 두껍다는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네요.

우상화는 독재정권의 작품

그럼, 우상은 어떻게 형성됐을까요? 이런 걸 오늘날 플라톤식으로 대중들이 '동굴속 우상'에 갇혔다고 하는진 몰라도, 박정희는 자신을 '정보기관과 언론'이라는 두 개의 무기를 가지고 아주 철저히 우상화해 나갔어요. 즉 자신에 대한 철저한 '사적 정보 통제'와 '대한늬우쓰~'로 상징되는 이미지 정치를 누구보다 그 자신의 시대에 멋지게 구현해냈던 양반입죠, 젠장~

대중들은 그 시대엔 물론 실체엔 접근할 통로조차 없었고, 단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볼 수 있었으니 그가 아직까지 신으로 추앙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그를 무조건 추종하는 사람들이 꼭 못났다거나 무지하기 때문이란 편견은 이쯤에서 이제 버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뇌에 한번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란 세대를 뛰어넘어 종종 전설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해외여행 가는 것도 국가의 허락이 떨어져야 가능했던 철저히 장막으로 가려진 국가 통제의 시절에 감히 다른 나라와 민주주의에 대한 비교평가를 해본다는 건 꿈 속에서도 불가능했던 걸음마 단계의 한국 사회였으니, 기껏해야 인민들이 체험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었던 건 온통 피폐와 혼란의 기억밖엔 없던 그 이전의 이승만, 장면 정부가 전부였겠죠.

그러니 이제 와서 그의 실체를 까발리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침 튀기며 설명해본들 모든 것이 그의 손을 거쳐야만 가능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틀어쥔 그를 통해 몸소 격어본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체제'를 거치며 살아 온 당시의 민초들이 모든 공을 그에게 돌리며, 어쨌든 그가 '먹고살게 해주었다.'는 각인된 고마움을 지울 수 없는 건 어쩌면 운명이라 할 수밖에요.

정말이지 우상화된 이미지란 이토록 무서운 것 같습니다. 특히 현실의 삶이 팍팍하면 팍팍할수록 과거의 기억은 아름다운 무지개빛으로 채색되는게 아마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당장 박정희식 정치의 모방에 불과한 이명박식 정치의 반동으로서 - 사실 내용적으론 민중의 경제사회적 삶쪽에선 강퍅하기가 더 하면 더 했지 별로 나아진 바가 없었던- 노무현 시대를 금세 그리워하며 그를 신으로까지 격상시키려는 움직임이 거센 걸 보면 말입니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아 온 이 사회 수혜자들은 정작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우상 파괴하지 못하면 '제2, 3의 박정희'뿐

앞에서 이미 수없이 지적했듯이 어떤 '우연이든 필연이든'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박정희 망령이 드리우고 있는 짙은 그늘은 정말이지 천형처럼 깊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나아가야 할 정치발전이란 과제를 자꾸 과거회귀적으로 돌려놓으며 발목잡게 할 뿐만 아니라 정치를 정치답게 하는, 즉 민중의 정치로 나아가는 길에는 더더욱 커다란 장애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공고합니다. 절대 쉽게 안 무너집니다. 보세요. 그들은 이러한 힘으로 누구보다 개발독재식 경영에 귀재였던 mb를 이미 대통령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프로그램으로 이미 상당한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는 박근혜를 포스트 이명박으로 낙점해 놓았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단지 그것뿐일까요? 그 이후에도 제3, 제4의 박정희가 우리 사회가 이 우상을 파괴하지 못하는 한 계속될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는 사실이 우리를 절망에 들게 합니다.

그렇기에 여기에 맞서 지금 시점에서 또 다른 우상을 만들어 전선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에 나는 비판의 칼을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비틀려 한번 구조가 잘못 형성되면 그것이 고착을 불러오고 세대를 물려가며 반복될 개연성을 박정희 망령이 이미 실증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어버릴 경우, 이후의 한국 정치가 결국 박정희표 모델과 노무현표 모델의 싸움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가 몹시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와 같은 짓은 그야말로 민중정치로 나아갈 실낱같은 희망조차 우리 스스로 완전히 포기하는 자살행위와 다름 아닌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 민주개혁 세력으로 지칭되는 민주당파가 세월을 역류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 박정희 망령을 걷어내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마찬가지로 한나라당파의 입장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지탱되고 있습니다. 이쯤이면 지각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눈치 챘을 테니 굳이 이를 방증할 '87체제' 이후의 지저분한 이야기들은 빼고 가겠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조적 문제로 볼 때, 사실상 정책과 이념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이 두 거대세력이 계속해서 동일한 기득권을 유지해 가는 최적의 길은 항상 적당한 파트너가 존재해줘야만 가능할 것이란 것은 박정희 이후에서 현재까지의 정치구조로 볼 때 결코 추측이나 공상쯤으로 가볍게 치부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는 역으로 어느 한 축이 급격히 무너지는 순간 다른 한 쪽 역시 도미노처럼 파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호보합적 구조'로 한국 정치 지형이 유지돼 왔다는 것을 거꾸로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이를 위해 상습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바로 '견제세력론'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논리는 계속해서 유권자들에게 먹혀 왔습니다. 사실 자신들 없으면 한국 정치가 곧 무너질 거라고 징징대는 이런 '오만의 극치'를 당장 구조적으로 해체해 내지 못하는 유권자들의 무기력함 역시 분명 짚어볼 문제이긴 합니다. 어찌됐든 이런 배경을 익히 꿰뚤어 보는 독자라면, 이번 '뉴민주당 플랜' 어쩌고 하며 성장을 모토로 더 우경화해가는 오늘날 민주당의 모습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추모 열기 식으면 '민주당 거품'도 꺼져, 박근혜만 최대 수혜

지난 글 마지막 부분에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결과는 '박근혜 만세!'라고 잠깐 열을 냈던 걸 아마 기억할 것입니다. 그 근거는 단기적으로 지금과 같은 민중의 추모 열기가 일시적으로는 'mb 정부'를 궁지에 몰 수 있을런진 모르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선 결국 박정희 적자 박근혜에게 정권을 대물림하는 참담한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을 이제 이쯤에선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단기적으론 민주당에 분명 수혜가 되겠지만, 결국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가 될 개연성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감성적 추모의 열기가 식고 나면 곧 민주당은 대중 앞에 그 알몸을 다시 여실히 드러낼 수밖에 없을 테고 그 순간 이 일시적 수혜의 거품 또한 곧 걷히고 말테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강령까지 바꿔가며 우파에서 좌파 정책으로 돌변할 리도 만무하고, 정동영이든 손학규든 아니면 지금의 정세균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든 말든 그런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들의 한계성이 이미 노무현 시대를 거치며 여실히 검증되었다는 점에서 결국 과거의 반복이 답습될 뿐이라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설령 그들 중 누가 천운으로 대권을 잡는다 해도 노무현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래저래 민중의 입장에선 또 몸빵, 눈물빵, 앵벌이짓까지 다 해봐야 결국 떡고물은 모두 기득권 호주머니로 쓸어담아질 거라는 말과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민중의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에 어떤 요구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노무현 우상화를 거치지 말고 요구하고 쟁취해내야만 곧 그것이 우리 것이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감상주의 벗어나 '인간의 지도'로 연대해야

마르크스가 그랬다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수탈하고, 나중에 수탈에 지친 노동자가 자살하려 하면 그들에게 밧줄 팔아먹는 놈들이다."고. 나는 한국 정치의 이 거대한 양대 세력이 얼마나 가진 정책들이 빈곤하면 만성 '성장지상주의' 노이로제에 시달리며 이리도 심한 '왜소컴플렉스'를 앓고 있을까 하고 때때로 좀 측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감상적으로 한국 정치를 관조해 보기엔 우리 민중들에게 주어진 현실과 미래가 결코 녹녹치 않다는 점은 아마도 대부분 동의할 겁니다.

이 내것밖에 모르는 강퍅한 자본의 시대를 헤쳐 나가며 어떤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애도하는 건 어쩌면 무너져 가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듬어 안고 일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간다운 면을 잃지 않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한 우린 자본의 노예도, 여하한 조폭 정치의 노예도 결코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집시다.

연대의 손이 그런 동질성의 바탕에서 시작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부디 '인간의 지도'로 '사람 사는 세상'을 넘어 '사람다운 세상'이 이루어질 그날까지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철수 시인의 '연대'라는 시를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바치며, 다소 지루하고 짜증나는 글 끝까지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철수 시인의 <연대>     ©

* 필자의 블로그 : http://blog.ohmynews.com/gak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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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6/04 [23:0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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