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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王의 원래 국제적호칭은 倭王이다!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홈피 방문기
 
김기백칼럼 기사입력 :  2008/05/1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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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王의 원래 국제적호칭은 倭王이다!


http://www.minjokcorea.co.kr/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홈피 방문기

입력시간 : 2005. 02.02. 02:47
 
 
▲    대한제국 광무 고종황제

 
 
 
 
 
 
 
▲    편집부


 
▲     편집부


맨위는 대한제국의 비운의 군주였던  우리 고종황제의 서양식 정장차림 사진이고, 중간의 사진은 1872년에 찍은 공식 궁정복 소쿠타이 차림에 수염이 없는 일본군주 메이지의 앳된 얼굴이다. 반면 바로 그 이듬해에 찍은 아래 사진에서는 몸에 딱 맞는 서양식 군복을 입고 머리는 짧게 잘라 가르마를 탔으며 수염을 길렀다.


[조선일보 권대열 기자]


盧대통령 "日王은 천황?"… 潘외교 "천황이 맞다" /조선일보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은 1일, 일본 왕(王)은 천황(天皇)으로 부르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본 산케이신문 특파원이 이날 외교부 장관 브리핑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천황’이라고 할지 일왕(日王)이라고 할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한국 정부 입장이 뭐냐”고 물은 데 대해 이렇게 답했다.

노 대통령은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일본 왕이라고 (호칭)해야 하나, 천황이라고 해야 하나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1998년 김대중 정부 당시 ‘천황’이라 부르기로 한 뒤 이를 따라왔는데, 일본 기자는 노 대통령 발언으로 한국 정부 입장이 바뀐 것인지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반 장관은 “방침이 바뀌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11월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초청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반 장관은 “북한의 참여 문제는 협의하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정 장관 발언은 기대와 희망을 표시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권대열기자 [ dy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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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王의 원래 국제적호칭은 倭王이다!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과정에 일체 개입치 말것!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홈피 방문기-

입력시간 : 2003. 06.05. 00:00

아래의 글은 필자가, 작년(2002년)1월초에 한국내의 각계에서도 명망있는 소위 知韓派로 알려져있고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자 100분토론에도 출연한바 있는 구로다 가쓰히로라는 일본인이 최근(그당시)개설한 -구로다 가쓰히로 연구회-라는 싸이트를 방문한 직후에 조갑제 홈피에서 어느 네티즌과 주고받은 대화록이며 구로다의 홈피는 그얼마뒤(정확한 경위는 모르지만) 사실상 폐쇄된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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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최성훈
(kotai@hanmail.net) 2002/1/7(월) 03:30 (msie6.0,windows98,win9x4.90) 61.73.152.9
1024x768 [김기백님께]

전형적인 일본인이란 어떤 부류를 말씀하시는 것이죠?

안녕하세요. 그저께 '구로다 기자 연구회'
http://www.freechal.com/kuroda 홍보글을 올린 최성훈입니다.


김기백선생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게시판에 글을 많이 올려주셨습니다. 우선 김기백선생님께,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구로다 기자가 일반인들에게까지 이름을 알려지게 된 것은 작년의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 때였을 겁니다.


그 때 한국에서 요구한 것은'일본의 시각으로 교과서 만들어 학생에게 가르치면 곤란하니, 인접국 한국,중국의 역사관에 맞추어 써라.' 였습니다.

그 때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기자가 들고 온 것이 '과연 한국의 교과서는 정확하게 써있는가?' 였습니다. 그의 그 기사는 한국에 소개는 거의 안되었지만 산케이 신문에 약 2주간에걸쳐 게재가 되었습니다. ( 조만간 번역하여 게시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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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훈님.참답답하네요...전형적 일본인이란.....


먼저 밝혀 두고 싶은것은 나는 결코 구로다라는자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다만 그런자의 논리에 현혹되거나 휘말려서는 안된다는것이지요. 또하나, 내가 말하는 전형적 일본인이란 얼핏봐서는 매우 겸손,친절,공정하고 예의 바른것같으나 속내는 매우 이기적이고 영악하여 표리부동[인간들의 속성이 그렇기마련이지만 일본인은 농도가 유별나다]하고 매우 앙칼지다는 거지요.

 
한.일문제의 진정한 본질과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갖가지로 무수히 역설한바 있기때문에 굳이 따로 재론치 않겠고 다만 구로다라는 자의 사이트에 내가 공개적으로 띄워논 메세지와 한.일관계사에 대한 그자의 대표적 요설,궤변에 대해 쓴글을 덧붙이니 참고하세요..

더우기 구로다가 속한 산케이 신문이 일본극우의 선봉임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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洋毒보다 더 무서운 倭毒-


구로다라는자의 농간에 놀아나는 신도가 벌써 적잖으니...내하나만 더 일러주마

일본인들은 자기네 끼리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고 정말 모범적일 만큼 경우바르고 의리있고.공중도덕 잘지키고 때로 놀랄만큼 통크게화끈하기도 한게 사실이고 바로 그런점때문에 자네처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덜떨어진 특히 한국인들이 껌뻑 넘어가는거지-

그런 일본인들이 밖에서도 과연 그런지 어떤지 그토록 식별이 안되는가?? 일본인들이 얍삽하고 표리부동한건 온세계가 다아는데 우째 니들부류만 모르냐? 이 우매한 동포야!!두눈크게 똑바로 뜨고 정신 가다듬어 살펴 봐라-

내말이 헛소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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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산케이신문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는 허튼 잔꾀를 부릴 생각 말라-

나는 매우 강경한 반일주의자 이기는 하나 결코 일본을 무조건 배척할것을 주장하거나 모든 일본인을 무턱대고 증오하는 편협한 국수주의자가 아니다. 대다수의 평범한 일본인은 선량한 소시민임을 인정하며 게중에는 참으로 양심적인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러나 구로다 가쓰히로 귀하는 아니다.
 
 
적어도 귀하가 제대로된 언론인.지식인 이라면 같은 전범국인 독일에비해 너무도 후안무치한 귀하의 조국 일본의 비양심을 있는그대로 인정하고 한.일 양국사회에 사실그대로를 알리는 작업부터 앞장서 해나가야 한다.

더이상 긴말할것도 없다. 귀하는 귀하의 조국 일본만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일뿐이며 한국사회에도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 볼줄아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처신하기를 권고해두는 바이다.

단기 4335(서기 2002)년 1월 6일 좌우를 뛰어넘는 민족주의자들의 모임

-일본을 경계하는 한국인 회의 - 김 기 백(金 淇 白)

02]447-1986

e메일:
baek43333@hanmail.net

홈페이지:
http://nationalism.cy2.net
======================================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가쓰히로의간계

조회 : 143회 입력시간 : 2003. 03.30. 19:23


-최성훈씨,두눈크게 뜨고 똑똑히 보시오-

re..귀하가 제시한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의 간교한 궤변에 대해 핵심을 짚어 논박하리다. 우선,구로다라는 자가 제기한 왜 다른나라는 다 천황 혹은일황이라고 하고 있고 한국도 여태 그러다가 皇을 거부하고 굳이 王으로 격하하려는 여론이 형성되고 그걸 고집하는가에대하여...

- 첫째: 구로다 스스로 인정했듯이 일본은 명치이전까지 저혼자,그것도 어디까지나 내부용으로 天皇을 자처했을뿐 어느나라도 저들을皇帝國으로 인정한바 없을뿐아니라 저들또한 외교 문서[國書]에 감히 을 쓰지 못했으며-


하물며, 天皇이란 칭호는 구로다 스스로 인정한바처럼 전통동양사회에서 그야말로 조물주와 맞먹는격이라할 옥황상제를 연상시키는 실로 유례없을만큼 방자하고 참람한 自尊妄大의 호칭이라 저네들이 저희끼리 그리부르건 말건 우리가 거부감을 갖는것은 당연하며,역사적으로도 日王은 고사하고 통상 倭王으로 불러온것이 오랜 관례였으며, 임진왜란때 전쟁이 장기화하자 명나라황제가 회유책으로[당시 심유경이라는 중국측의 일종의 정치브로커가 활약] 풍신수길을 倭王으로 책봉하려한 사실도 있으며 그따위 지엽말단적인 문제보다 우리 한국인 모두가 분명히 알고 있어야할 참으로 주요한 역사적 사실은 정작 따로 있다는것.

무슨 얘기인가?

 
▲    동래전투  순절도:편집부



저들 일본은 이미400년전인 임진왜란때 전쟁이 장기화되자 당시 명나라에조선팔도 를 남북으로 4도씩 분할하여 명과저들이 나누어 통치할것을 협상조건으로 제시했을만큼 특히 조선에 대해서는 실로 집요, 악랄 하고도 뿌리깊은 침략성을 거의 본능적으로 지닌자들인바 오늘의 한반도 분단이 결코 우연히 발생한일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무엇보다 을미왜변[명성황후 참살-시해사건]이후 저들의 소위 天皇의 이름으로 온갖 참살과 치욕과 수탈을 당한 우리가 뒤늦게나마 강한 알레르기를 갖는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것.


둘째: 우리가 저들에게 皇으로 대우하지 않은게 빌미가되어 결국 망국의 화근으로까지 발전되었다는 변설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터무니 없이 왜곡,호도하는 얄팍한 수법인바 구로다라는자가 얼마나 간특한 전형적 일본인인가를 스스로 입증,웅변해주는 간교한 궤변에 불과함. 어째서냐고?
▲   풍신수길:편집부



임진왜란때나 소위명치유신 직후때나 우리가 저들을 왜왕으로 부르건 일황으로 부르거나에 상관없이 저들은 이미 침략할 작정으로 만반의 계책을 수립해놓고 있었다는 사실.

동포여!!! 내말이 틀리다고 생각되는가?

우리가 만약 외교문서에 저들의 요구대로 皇으로 표기했다면 저들이 침략하지 않았으리라 믿는가? 다시말해 저들은 언제나 호시탐탐 침략에 유리한 결정적 시기만 노려왔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한 속성은 지구 문명이 존재하는한 결코 변할수 없는 섬나라 오랑캐[島夷]근성을 떨쳐낼수 없는 종족이며-

또하나,우리가 아직도 華夷秩序圈의 케케묵은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그렇다고??? 동포여 !!! 구로다라는 자에게 한번 이렇게 물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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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진작華夷秩序圈에서 벗어나서 선진화.서구화된 너희 일본은 어째서,도대체 무슨이유로,보통명사인 王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굳이 케케묵은 皇그것도 방자하기 짝이없는 天皇을 끝내 고집하는가?라고 한번 물어보라!

또하나 ,병자호란은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이치와 결과는 대동소이.따라서 별도로 논급할가치가 없슴.

다음:구로다라는자가 말하기를... [일본은 20세기 내내 한국인의 내셔널리즘으로 고민해 왔다.] 고 ???

痛哉 痛哉라!!!동포 동포여!!!

이야말로 얼마나 가증스러운 적반하장이자 간교한 기만 ,우롱인지에 대해서까지 내가 일일이 논박해야 하는가???
 
 


▲  편집부   © 일본 외무성이 발행한 독도를 죽도라 표시한 책자



다음:구로다라는자가 어떤 얼빠진 한국인들과 나누었다는 대화역시 치가 떨릴만큼 가증스럽고 간교한 수법이나[그대화자체는 어김없는 사실일것이다]

어느나라나 숫자와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덜떨어진 백성들 혹은 매국노,별종이 있기마련이며 패전직후 맥아더 치하에서 일본 에서도 차라리 미국의 한주로 편입해버자.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한다는 등의 수작을 하다가 실각 하고 야쿠쟈한테 칼맞은 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구로다 자신이 더 잘알고 있음에도 극소수 얼빠진 한국인과의 대화를 인용하는 그자의 혼네가 얼마나 가증스러운것인가?

▲    일본은 종전 반세기가 지난 지금 과거를 잊은 듯 세계 유수의 군사력을 보유한 채 재무장 억제의 최후 보루인 헌법마저 개정하려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1년 4월 치러진 자위대의 열병식 장면.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돌팔이 짝퉁보수와 간교한 사이비 진보의 이전투구, 그끝은?

다음: 김대중 정부의 얼빠진 외교행태에 대해 구로다가 이리저리 제멋대로 논평하고 지껄이는것 또한 한국사회전체를 제발톱에 때만큼도 못하게 만만히 보고 갖고 놀자는 수작인바 세세히 논할 가치조차 없는것임.


또하나: 월드컵공동개최 자체가 애초부터 크게 잘못된것임. 동포여!!!

곰곰생각해보라 !월드컵이 아무리 큰국제행사인들 그걸로 대체우리가 몇년이나 우려먹을수 있으며 월드컵이 큰가 독도가 큰가를 생각해보라!!!

월드컵 너무 좋아하다가 는 백천번의 월드컵으로도 되찾을수 없는 크나큰 손실을 보게되고 만다는것. 끝으로 나는 최 성훈씨를 비롯 이땅의 청년제군이 반드시 명심해야할 다음 몇가지 사항을 각별히 당부하고자 하는 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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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구로다 가쓰히로는 제조국 일본에 분골쇄신 충성을 다하는 철두철미한 일본인이라는 사실.

둘째:일본의 對韓 정책의 본질과 실체는 남북한 분단고착화 ,분열책동이라는것.

셋째:일본은 같은 전범국인 독일에 비해 실로 너무도 후안무치하고 비양심적이라는것 .


넷째:적어도 19세기 말이래 현재까지는모든면에서 일본이 고양이라면 우리 한국은 쥐에 불과하다는것.[우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


따라서 ,마치 쥐가 고양이더러 넓은가슴으로 안아주겠다고 설쳐대는 우스꽝스러운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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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결론은 구로다 가쓰히로 자신이 독일에 비해 너무도 후안무치한 제조국 일본의 비양심적 행태를 솔직히 인정 통렬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를 한.일양국사회에 적극전파하는 작업에 앞장서지 않는한 그자가 표방하는(駐韓 외국인들의 우정 어린 비판과 충고) 라는 따위의 일견 그럴듯한 구호는 방자하고도 가증스러운양두구육의 기만이요 ,농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지 아니한가?


구로다가 진실로 떳떳하다면[ 駐韓 일본인들의 우정어린 비판과 충고]라 해야 마땅할것이며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의 잘못과 허물부터 있는그대로 인정한 다음에, 상대에게 비판과 충고를 해야 그진실성, 순수성을 인정받을수 있는것이 명색 문명사회의 너무도 당연한 매너요 순리아니겠는가?


더 까놓고 말하자면 구로다는 매우 지능적 수법으로 특히 언론계를 비롯 덜떨어진 한국의 지식인 사회와 청년세대의 이성을 교란 마비시킴으로서, 한국사회에 무력침략보다 오히려 무서운 문화침략,정신 침략의 선봉장으로서 투철한 목적을 철두철미 수행중인 일본극우의 정예, 고등 첩자로서, 가소롭게도 최근 -구로다 가쓰히로 연구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인터넷 사이트까지 개설, 한국의 청년층을 대거 유인, 세뇌시키고 한국내의 여론을 더한층 교란,분열 시키려 책동하고 있는바 우리는 이를 예의주시, 엄중관찰해야 하는것이다 .
 
 
▲  꼿꼿하게 서있는 일왕부처 에게 고개.허리까지 숙여서 인사하는 얼빠진 이명박내외
▲     [외로움 배고픔 이겨가며 우리땅 지킨 독도의용수비대]




단기 4335(서기 2002)년 1월 8일

좌우를 뛰어넘는 민족주의자들의 모임

일본을 경계하는 한국인 회의 김 기 백(金 淇 白) 02]447-1986

e메일: baek43333@hanmail.net

홈페이지:
http://nationalism.cy2.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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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훈(
kotai@hanmail.net) : 김기백 선생님, 이 글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최성훈입니다.
월간조선 1999년 12월의 이 기사로 부탁드립니다.

저 밑에 어떤 분이 나눠서 올려주셨는데 한번에 묶어서 다시 올립니다.


千年末·世紀末의 반성 : 구로다 가쓰히로 (1/6) │

(駐韓 외국인들의 우정 어린 비판과 충고) │


*駐韓 외국인들의 우정 어린 비판과 충고

*이것만 고치면 한국은 21세기에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지식인과 언론은 守舊的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날 것인가 │

구로다 가쓰히로(黑田 勝弘) : 1941년 일본 오사카 출생. 교토(京都)大 경제학부 졸업. 1980~1989년 교도통신.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겸 논설위원

天皇과 日王
일본의 국가원수인 「天皇(천황)」을 한국 언론은 「日王(일왕)」으로 호칭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전부터 외교문서 등 공식적으로는 天皇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는데, 金大中 대통령이 작년 일본방문을 앞두고 『상대 나라의 호칭을 존중하는 것이 국제관례다』고 하여, 한국정부는 天皇이라는 호칭의 사용을 새삼 확인하였다.


그 결과, 동아일보와 kbs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된 반면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mbc 등 많은 미디어는 여전히 「일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요컨대, 대부분의 여론이 아직 「천황」이라는 호칭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 대만, 홍콩의 미디어는 모두 「天皇」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영어권이나 독일에서도 「emperor」나 「kaiser」라고 표기하며, 「king」이라는 표기는 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 언론만이 상대방의 정식 호칭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만든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아주 특이한 현상으로, 한국은 국제적으로 특이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왜 이런 기묘한 현상이 생겨났는가 하면, 한국 여론의 일본에 대한 감정, 즉 反日(반일)감정의 탓이다.


이는 한국 여론의 對日(대일) 감정이 국제적으로 이렇게까지 특이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여기서 이 문제를 꺼낸 것은 한국인의 국제의식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20세기 1백년의 韓日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에 있어서 天皇에 대한 호칭의 흐름은 대략 日王, 天皇, 日皇, 日王의 順(순)으로 변화되어 왔다.


두번째의 天皇은 일본통치시대(日帝時代)에 강요로 인해 사용된 것으로 그 이외에는 「天」을 사용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중국문화권에 있어서는 「天」은 한국어의 「하나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을 지배하는 신과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중국에는 「天帝」나 「天子」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런 절대적 존재를 의미하는 「天」이라는 문자를 중국이 아닌 일본이 사용하는 것에 한국은 예전부터 강한 거부감을 표시해온 것이다.


또 「皇」도 마찬가지이다. 중국문화권에 있어서 「황제」는 중국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해 주변의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은 모두 「王」이어야 한다.

이것이 중국지배 아래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질서였다.

▲    4차 조선통신사 행렬도 국서라고 쓰인 가마가 가장 선두에서 지나가고 있다. 말을 탄 조선 관리들을 일본 하급 무사가 시종을 들고 말을 끄는 일본의 하층민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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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 지역에서 지배자인 중국은 문명이 발달한 「華」인 반면에, 주변의 민족은 문명이 未(미)발달한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夷」라 하여, 19세기 이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의 국제질서를 「華夷秩序(화이질서)」라 한다.

이 「華夷秩序圈」에 있어서 「皇」은 중국에만 허용될 뿐, 일본이나 다른 민족은 사용해서는 안되었다.

19세기 華夷 질서를 고집하는 한국

그러나 일본은 섬나라인 탓인지, 그다지 이 지역의 국제질서의식이 강하지 않아, 이미 8세기경부터 스스로 王을 마음대로 「天皇」으로 호칭해 왔다.

이 부분이 중국문명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거리감의 차이로, 19세기 이후 서구근대화에의 대응에도 미묘한 영향을 초래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략하기로 한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日皇」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는데, 「皇」이 남은 것은 일제시대의 흔적이었을까. 언론에서는 1980년대 후반까지 거의가 「日皇」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는데, 이것이 1989년을 기점으로 일제히 「日王」으로 바뀐다. │ │ 그 계기는 1989년 昭和(소화) 천황(히로히토 천황)의 사망에 관한 보도와 관련해, 한국 언론계에서는 『일제시대도 아닌데 왜 「일황」이라 부르는가, 「일왕」으로 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주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 언론은 「皇」을 「王」으로 격하시켜, 일제히 「일왕」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19세기 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20세기 말의 이야기이다.


金大中정부가 정부로서 「天皇」을 정식 호칭으로 부르겠다는 견해를 再(재)확인했을 때, 한국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贊反(찬반) 토론이 있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이 朝鮮日報 1998년 5월15일자 「이규태 코너」였다. 이 기사는 중화문화권에 있어서 지배자의 호칭 문제를 역사적으로 해설한 뒤, 「對日(대일)감정은 제쳐두고라도 이와 같은 역사적 관행, 즉 皇과 王은 服屬(복속), 사대주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왕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논리는 아주 흥미롭다. 19세기 또는 그 이전의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 즉 「華夷秩序」 체제하에 있어서 「황」과 「왕」의 종속관계를 현대까지 그대로 연결시켜, 한국으로서는 「천황」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華夷秩序」의 붕괴는 오래된 일로, 중국에는 「天子」도 「皇帝」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에도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이 공화국을 선택한 이래 반세기가 흘렀다. 한국은 이미 君主制(군주제)나 王政(왕정)이 아니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도 예전과 같은 「화이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아직도 「화이질서」 의식이 나온다.


한국의 지식인이나 한국 언론은 아직도 19세기적 국제질서 의식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皇이냐 王이냐」의 문제는 아주 흥미롭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외교적으로 「皇」을 거부해, 두 번이나 망국의 괴로움을 당했다.


하나는 19세기 후반에 있어서 일본과의 관계로, 일본이 메이지(明治)혁명에 의해 근대국가로서 출발했을 때, 한국(朝鮮朝廷)은 일본의 신정부가 국교정상화를 위해 보내온 외교문서에 「皇」이라는 문자로 인해 이를 거부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소위 「征韓論(정한론)」이 일어 한국은 일본에 의해 開國(개국)을 강요당하고 그 후의 경과를 생략하면 결과적으로 한국은 일제지배라는 망국의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병자胡亂의 배경

일본의 메이지혁명은 한국의 이웃에 강력하고 큰 군사력을 지닌 근대국가가 등장했다는 주변 국제정세의 격변을 의미했다.


이것이 「皇」이라는 외교문서로 한국에 다가왔는데, 한국은 「화이질서」의식 속에서「皇」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해, 이를 거부했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이 대응이 망국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일이 17세기에도 있었다.

중국에서 淸나라가 明나라를 쳐부수고 중국에 새로운 왕조를 건국하려 했을 때, 조선조정은 淸이 보내온 외교문서에 자기들의 왕을 황제로 칭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淸은 만주의 女眞族(여진족)이 만든 소위 오랑캐였기 때문에 조선은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조선은 병자호란에 의해 淸의 무력침공을 받아 삼전도의 굴욕을 맛보게 된다.


중국대륙에 明 대신에 淸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다는 주변 국제정세의 격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漢族(한족)의 明의 권위를 고수하는 예부터의 「화이질서」에 구애받았기 때문에 침략당한 것이다.

20세기 말인 지금, 한국은 또 皇에 구애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한국이 주변국의 皇을 거부한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지배를 당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지난 過去史(과거사)의 교훈은 그 시대의 국제감각을 묻고 있는 것이다. 종래의 질서의식에 집착함으로써 주변정세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커다란 국익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한국을 둘러싼 주변정세는 또다시 격변해가고 있다. 皇을 거부하는 한국인의 의식, 즉 19세기 이전의 華夷的(화이적) 내셔널리즘으로 과연 이 국제정세에 따라갈 수 있을까.


게다가 이번은 17세기나 19세기의 경우와 달리, 정부(김대중 정권)는 국제관례와 주변국(일본)과의 우호 및 관계강화를 이유로 皇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言論(여론)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나 19세기에는 여론(언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대는 여론이 나라를 움직이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여론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여론(언론)이 守舊的인 내셔널리즘에 구애되어서는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까.

이건 여담이지만, 한국 언론이 「皇이냐 王이냐」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넌센스일지도 모르겠다. 漢字를 배척하는 현대 한국에 있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皇과 王의 차이를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한자를 배척하면서 한편으로는 19세기적인 옛 中國支配圈(중국지배권)의 질서의식에 집착한다는 것은 하나의 불가사의이다.

20세기에 있어서 한국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그 선명하고도 강렬한 내셔널리즘(民族主義)이다. 일본은 20세기 내내 한국인의 내셔널리즘으로 고민해 왔다. 그만큼 일본인에 있어서 그 내셔널리즘의 행방은 최대의 관심사이다.


21세기에 한국내셔널리즘 즉, 反日(반일)감정은 변화할 것인가, 아닐 것인가.


「脫 反日 선언」

金大中 대통령은 작년 이후, 괄목할 만한 발언을 반복했다. 우선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訪日(방일) 때에 한일공동선언이 발표된 후에 『일본과의 과거는 청산되었다』고
말하고, 더욱이 imf 사태 이후, 국제화 노선을 추진하면서 『이제 (편협한) 민족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해왔다.

 
▲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 도착하면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왕이나 탈 수 있었던 커다란 가마에 올라앉은 조선통신사의 모습은 이를 대변합니다. 당시 통신사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의 군중들이 몰려들었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는 21세기를 향한 「脫(탈) 민족주의 선언」이며 「탈 反日선언」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명확히 한국내셔널리즘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과거 1백년, 내셔널리즘으로 물든 한국에 있어서, 내셔널리즘 포기와도 같은 이 선언은 또 하나의 혁명(?)이다.

일본을 비롯해 세계는 그 행방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택시운전사는 어느 나라에도 정보통으로, 유능한 사회평론가다. 특히 외국인에게 있어서는 시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귀중한 정보원의 하나로, 필자도 그 은혜를 입고 있다. 그 택시 운전사로부터 요즘 잇달아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사회가 변화하겠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모두 필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한 사람은 30대 남자로 일본의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에 있는 수산회사에서 1년간 트럭운전사를 한 적이 있다며, 한국과 일본의 교통질서를 비교해가며 열심히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국이 일본에 지배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과거사에 대해서의 반성은 일본보다 우리들이 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또 한 사람은 50대 모범택시 운전사였는데, 역시 교통질서 이야기로 시작해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 결론은 『일본에 사죄나 반성을 추구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본이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왜 일본에 당했는가를 우리 스스로가 반성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냐』고 열변을 토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일본 사람은 대답하기 곤란하다. 필자는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으로서 그래, 그랬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과연 그런 생각도 있네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생활 20년인 필자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과거에도 들은 적이 있다.
韓日간에 지금까지 일본 정치가의 妄言(망언)으로 외교문제가 된 「일제시대에 일본은 좋은 일도 했다」는 이야기 등, 한국인의 私的인 대화에서는 많이 들어왔다.


이번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수일간 같은 이야기를 잇달아 들어서인지 신선한 느낌이었다.

克日보다는 克己

imf 사태는 또 하나, 시장경제주의라는 새로운 발상에 의해 한국인의 의식에 국제화를 강요하고 있다. 이는 경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적 경쟁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데, 문제를 他人(타인)이나 他國(타국)의 탓으로 돌리려는 안이한 자세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인의 反日 감정에 대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가설로서 실은 이것은 일본을 향한 것이기보다는 한국인 자신을 위해 필요한, 한국 스스로를 향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反日 감정이라는 것은 일본을 항상 의식하고, 비판·비난하면서 일본에 대해 경계와 경쟁심을 불태우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현대사 속에는 많은 反日운동으로, 민족주의 감정이 타오르는 일이 많았는데, 그 고조된 反日 민족주의 감정의 수습은 언제나 克日이라는 구호였다. 1980년대 초반, 韓日(한일)관계를 흔들어 놓은 역사교과서 파동이 있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기술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한국측에서 일본 비난의 여론이 폭발한 사건으로, 1980년대의 최대 反日운동이었다. 당시, 어느 신문은 일면 社說(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실었다.

「교과서 문제에 관한 우리 국민의 여론은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게 된 國論統一(국론통일)의 현장이었다. 국가적 大事(대사)를 둘러싸고 한순간에 단결하는 국민성이, 우리 국민 속에 잠재하고 있음을 보여준 아주 기쁜 장면이었다」


지금은 보통명사로서 자주 사용되는 克日이라는 단어는 실은 이 교과서 사건 때 처음으로 등장한 것인데 필자는 교과서문제의 수습단계에서 克日을 둘러싼 한국 지식인의 인상적인 발언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여류작가인 정연희씨는 조선일보 좌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克日 운동이라는 단어를 들은 뒤부터 계속 기분이 개운치 않다. 해방 후 수십년이 지났는데, 아직 우리들의 의식을 긴장시키는 것에 일본이라는 자극이 필요하단 말인가. 克日이라는 단어에는 일본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들을 무엇인가의 기준이나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강요당하는 느낌이 든다.

일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오히려 일본에 얽매인다는 점에 있어서, 克日보다는 스스로에 이기는 克己(극기)를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어느 보수파 지식인이 최근, 일본의 한 잡지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최대의 기여는 戰前(日帝時代)에 걸쳐 근대화의 기초를 이룬 것이나 戰後(解放後)의 oda(경제원조) 등이 아닌 과거(反日?)라는 유산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福田和也氏)고 비꼬는 논평을 썼는데, 끊임없이 일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인에 있어서 反日 감정은 스스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확인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인지도 모른다.


이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본이 없으면 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된다. 진정한 내셔널리스트(애국자)라면, 이런 점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불만과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과거 복귀냐, 미래로 나가느냐


한국인의 反日감정은 주로 과거사에 관한 일이다. 反日 감정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과거에서의 離脫(이탈)이 필요하다. 그리고 과거에서의 離脫이란, 의식에 있어서의 일본이탈을 의미하는데, 과거사에 대한 집착이 계속된다면, 한국 내셔널리즘은 아직 「일본」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래서는 의식에 있어서의 일본 의존에서 탈출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金大中대통령의 脫 민족주의선언 그리고 脫 반일선언에는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 反日 내셔널리즘에서 1백년을 보낸 민족주의 국가 한국의 지도자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국 및 한국인 만들기로써 自己否定(자기부정)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인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에서는 20세기의 마무리로 imf 사태를 맞았다. 金大中 대통령의 脫 민족주의선언은 그 속에서 행해졌지만, imf 사태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한국 및 한국인은 급속하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    백범 김구


예를 들어 한국은 지금, 금융위기 극복만으로 imf 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한국인은 imf 國難(국난)의 구호 속에서 오로지 인내해 왔지만, 지금은 누구도 인내하지 않는다.


與野(여야)의 당리당략에 의한 극한 대립이나 언론의 무책임한 센세이셔널(煽動的) 보도 등 모든 것이 imf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으로부터 자기비판이나 인내, 협조, 상호배려 그리고 국가의식 등은 이제 사라지고 있는 듯 모두가 자기반성이 아닌 他人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imf 사태 아래에서 忍耐를 발휘한 한국인은 가짜였던 것처럼 본래의(?) 한국인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韓日관계로 말하자면, 한국인이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하고 있다면, 反日 내셔널리즘도 다시 혹시 옛날과 같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韓日간에는 일단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라는 약간의 제동장치가 있지만, 혹시 앞으로 金大中 대통령의 지도력이 저하하기 시작할 경우, 그 「민족주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도 끝날지 모른다.

金大中 대통령의 「脫 반일선언」은, 21세기에 향해서 한국인의 의식을 반일(反日)없이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일본탈피」시키는 것과 동시에 한국을 새로운 일본과의 협력관계로 이끌려는 어려운 선택이다.


이 선택의 결말을 끝까지 주시하고자 한다.●


김기백 기자 baek43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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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p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4 개)


독 자 의 견 제 목 이 름 작성일

4 구씨에게 한마디 더 가설 2003.06.08 (23:50:07)

3 구씨에게.. 그 세계정세를 보는 감각으로 일본을 평해보세요. 가설 2003.06.08 (23:46:22)

2 구로다씨의 논리의 이상한점 가설 2003.06.08 (23:29:37)

1 쿠로다 이 일본 우익 간첩놈! 준하 2003.06.05 (21:36:16) [1]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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