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 韓日관계 여론조사
빈약한 역사인식… 젊은층, 구체적 역사 몰라
일본의 "배상책임 없다" 주장… 대다수가 "동의 안 해"
100년 전 일본의 강제병합으로 우리 국권은 상실됐다. 그로부터 시작된 식민지 시대는 우리에겐 아픈 역사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담화문을 통해 식민지 지배의 강압성을 처음으로 인정했지만, 병합 자체의 불법성은 거론하지 않았다. '미래'를 얘기하면서도 시기마다 터져 나오는 독도, 과거사 문제 등으로 악순환을 반복해온 한·일 관계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조선일보와 한국정당학회(회장 숭실대 강원택 교수)의 연중기획 '기억의 정치'는 4회 마지막으로 '한·일 강제병합 100년과 일본'의 문제를 다뤘다.◆젊은 세대 '과거사', 중장년층 '독도'
연구진이 지난 6월 14일 한국 갤럽에 의뢰해 성인 10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들은 한·일 관계의 최대 걸림돌로 '교과서 및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34.8%)와 '독도 문제'(32.0%)를 꼽았다. '일본의 지나친 민족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7.9%였고, '한국의 지나친 민족주의'라는 응답은 7.6%에 그쳤다. 한·일 관계 갈등의 원인 제공자로 일본을 꼽은 것이다.
젊은 세대는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상태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주장은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현실적인 인식을 하고 있었다. 독도를 두고 다투기보다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면 연령이 높을수록 일본의 국권 침탈과 식민지 지배의 기억을 더 가깝게 가지고 있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여전히 경계심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 ▲ 한·일 강제병합 후 왕족과 총독부 관리들이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 고종황제가 앉아 있다. 조선일보와 한국정당학회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제병합이 1910년에 있었다는 걸 정확하게 아는 응답자는 15.4%에 불과했다.
일본과 강제병합에 대한 인식은 세대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연구진이 다뤘던 6·25전쟁,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서는 세대별로 평가가 크게 달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태도변화, 그리고 실천의 필요성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 1919년 3월 3일 고종황제의 장례 행렬이 대한문을 떠나 종로통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본 전통 제례 복장을 갖춘 인물들이 행렬을 끌고 있어 당시 장례가 전통적인 조선왕조의 의례를 따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에서 의외의 사실도 발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강제병합과 해방에 관한 역사적 사실(事實)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강제병합이 몇 년에 일어났는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15.4%만이 '1910년'이라고 정확히 답했다. 84.6%가 틀린 연도를 말하거나 모른다고 했다.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해(1945년)를 묻는 질문에도 50.4%만이 알고 있었고 49.6%는 틀린 대답을 하거나 모른다고 했다. 이 같은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는 젊은 세대일수록 심했다. 강제병합 연도는 20대의 11.7%, 30대의 14.8%만이 제대로 알고 있었다. 해방 연도를 정확하게 아는 20대는 42.3%, 30대는 47.9%였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세대 차이 없이 국민 다수가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구체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일본 문제를 단순히 감성적 차원에서 대응하기보다는 정확한 역사교육을 통한 이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실리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