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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역사에서 올해는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 규모에서 2위를 차지하여 명실공히 g2 국가가 되었다. 그릇에 물이 차면 반드시 흘러넘치게 되듯 중국이라는 그릇은 이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에서 일본은 중국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청나라가 우리 땅 아산·공주·평양에서 일본 군대에게 패배하고, 마침내 뤼순항까지 점령당한 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백기를 든 지 115년 만에 정세가 역전됐다. 그때 아시아가 일본의 팽창을 두려워했듯이 이제는 중국의 팽창에 아시아가 떨고 있다. 이런 정세 변화를 놓고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한마디씩 하고 있다. 소련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했던 핀란드처럼 중국의 주변 국가들도 ‘핀란드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걸 안다고 한들 중국의 힘이 멈추어지겠는가? 중국은 계속 더 강대하게 될 것이다.
북한을 보면 조선말을 생각하게 만든다. 1890년 윤치호는, 조선이 서서히 죽어가는 상황에 있으며 조선의 평화적 개혁이나 혁명은 불가능하므로 청국에 속박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는 왕비(민비)의 인식에 대해 “우리 세 사람(왕, 왕비, 왕자)만 안전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식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3대 세습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북한 역시 김정일 가족만 무사하다면 무엇이 일어나도 상관 않겠다는 듯하다. 29세의 청년 이승만은 1904년 감옥에서 『독립정신』을 집필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조선의 앞날을 내다보고 있었다. 청나라에 기대었던 수구파들은 청나라가 패배하자 이제는 러시아가 자기들을 보호해 주길 바랐다. 그 대신 금광, 철도, 산림 개발, 어업권이 러시아로 넘어갔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중국에 기댄 북한은 광업 채굴권, 항구 개발권 등을 이미 중국에 양도했다. 조선 말 고종 때처럼 북한 정권은 중국에 기대어 살아갈 길을 찾고 있다.
중국이 앞으로 더 강대해지고, 북한에 대해 더 큰 지배력을 가질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문제는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우리가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상황이 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북한이 혹시 중국식 개혁·개방을 도입한다면 북한은 중국의 위성국가로 정권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통일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혹시 세습이 실패하면 통일이 되는가? 중국은 미군이 주둔한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대기를 거부할 것이다. 미국 역시 북한의 핵무기만 제거된다면 구태여 중국에 반대해 행동하기를 꺼릴 것이다. 우리는 북한 땅이 중국으로 사실상 넘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어쩔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이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한다.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에게 중국은 안보로는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경제적으론 필요한 존재다. 적어도 몇십 년간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중국의 물결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중·일의 갈등에서 우리는 중립적이어야 한다. 중·일 사이에 센카쿠 문제가 있듯이 한·일 사이에는 독도 문제가 있다. 동북아 지역 분쟁에서 우리는 어느 편도 들지 말아야 한다. 반면 세계전략 시각에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미국을 놓치면 안 된다. 안보에서 미국을 놓치는 날 우리는 중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내부가 친중, 친미로 갈라지는 날 우리는 구한말 신세가 되는 것이다.
북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래의 어떤 시점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세습에 실패하게 될 때일지, 그 이후가 될지 누구도 모른다. 이때 북한 주민들이 중국을 선택하지 않고 같은 민족인 우리를 선택할 수 있게끔 그들 마음을 끌어안아야 한다. 북한 지도부에 대해서는 분노하되, 북한 주민에 대해선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들을 각성시켜야 한다. 이제는 위로부터의 통일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통일을 준비해야 할 때다. 오천 년 지켜오던 우리 땅을 중국에 넘겨줄 수 없다는 역사적 책임의식을 남북 국민이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현실은 그것을 넘어 우리에게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 행동의 첫걸음은 북한 주민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우리의 결심이다. 그래야 북한 주민 마음도 움직이게 될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