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레드라인 얘기 해보죠. 미국이 그어놓은 금지선 같은 건데, 북한이 넘은 건가요?
가야=일찌감치 넘었죠. 하지만 인정하기 싫어 둘러대는 것 같아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심정이라고나 할까. 이미 레드존에 들어온 북한을 한미가 계속 선을 다시 그으면서 “넘어오면 안 된다”고 어르고 달래는 상황 아닐까요.
미식가=ICBM 능력도 능력이지만, 북한을 컨트롤할 수 있느냐가 레드라인의 기준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당나귀=레드라인 공방도 정부와 청와대가 이슈 관리에 실패한 탓일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을 언급한 뒤 이낙연 총리와 송영무 국방장관이 조금씩 뉘앙스 다른 말을 해 정부 내 혼선이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했죠.
가야=국방부는 레드라인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사이다=공개적으로 우리가 제기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규정해 버리면 선택지가 줄어드니까요.
메아리=전략적 모호성을 언급하고선 사드든 레드라인이든 모호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게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화성-14형 성능 얘기 좀 해 볼게요. ICBM급 미사일이라는 이상한 표현이 등장했어요. 어떤 조건을 갖춰야 ICBM이 되는 거죠?
가야=고도 100㎞ 밑이 대기권인데, 미사일이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올 때 7,000~8,000도의 고열과 엄청난 압력이 발생해요. 탄두가 이걸 견뎌내고 온전해야 목표 상공 위에서 터질 수 있는 건데요. 북한이 거기에 필요한 재진입 기술을 가졌는지가 불투명하다는 게 우리 입장입니다.
사이다=미 전문가들도 재진입 실패 얘기를 거론했죠.
가야=북한이 아직 이 기술을 갖지 못한 건 분명해 보여요.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은 ICBM이 없다며 무시할 수 있느냐? 오히려 반대죠. 북한이 여태껏 보여준 능력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위협이니까요.
사이다=기술 개발은 진행형이고 사거리는 사실상 입증됐고, 미국이 안달할 만하죠.
메아리=북 도발에 남 사드에, 우리가 주도해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문 대통령 베를린 구상 실천이 힘들어진 걸까요.
가야=운전대를 잡기는커녕 아직 운전석 문도 못 열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사이다=베를린 구상은 A부터 Z까지 다 나열한 거라 좀 우려되긴 했죠. 청와대나 정부가 북한과 조율은 없었다고 했는데, 북한 반응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고요.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 정부 제안은 외면하고 바로 미국과 거래를 하려 하니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배트맨=청와대는 우리가 대북 압박 국면에 미국과 강하게 보조를 맞춰 놔야 나중에 진짜 중요할 때, 즉 관여나 협상의 순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인 듯합니다. 참여정부 때 미국과 어긋나면서 대북 정책이고 뭐고 다 꼬였던 경험을 반추한 것 아닌가 싶어요. 얼핏 보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보수 정부와 비슷하지만, 다른 구상이 깔려 있는 거죠. 성패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메아리=주도권을 찾아올 수 있을까요.
가야=사드로 미ㆍ중 두 큰형과 모두 불편해져 과연 잘 될지 걱정입니다.
사이다=대화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아서 북한에 파격적 카드를 제시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죠.
미식가=개성공단 재개나 5ㆍ24 조치(남북 교류 중단) 해제를 비핵화와 별개로 논의하자는 강수를 두지 않는 이상 북한이 대남 대화에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가야=정부가 정말로 북한과 물밑 접촉을 전혀 안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북한과 아무 사전 교감 없이 대화 제의를 한 게 적절했는지 의문도 들고. 북한에 등을 돌렸던 박근혜 정부조차도 비공개로 3차례나 군사회담을 했거든요.
사이다=저도 물밑 접촉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물꼬 트는 게 쉽지는 않아 보여요.
가야=어제 누가 그러더라고요. 트럼프가 아베와 52분이나 통화한 건 문 대통령을 향한 무언의 시위라고. 전략과 타이밍, 거기에 맞는 메시지. 이 3박자가 다 헝클어진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