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속절없이 저문다. 우리는 묵은해를 보낼 때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 푸념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겪는 ‘다사다난’은 지난해의 일만이 아니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앙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경제만을 탓하고, 모두 거기에만 매달리자고 한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소위 안다는 사람들은 모두 경제만 잘 되면 뭐든지 다 해결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착각들을 하고 있다.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을 먼저 챙겨야 한다.
그 중요한 것이 나라의 ´품격´이다. 나라의 <품격>을 다른 말로 쓰면 ´국격(國格)´이 되고, ´국격´을 살리자면 지식인사회가 살아있어야 한다.
조선왕조는 정말 가난한 나라였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나라가 무슨 힘으로 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망하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을까. 대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지식인사회가 건재’하였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그것을 입증할 수 있나. 장장 519년 치의 일기(역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순서대로(편년체·編年體) 적여서 남기질 않았는가.
유네스코가 세계의 기록유산으로 선정한 우리의 국보 151호 ´조선왕조실록´은 결단코 말하거니와 정치적인 중대사만 기록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우리 민족의 삶이 있고, 법도가 있으며, 이 나라 강토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길이 적혀 있다.
- 대저 정치를 잘 하려면 지난 시대의 치란(治亂)의 자취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난 시대의 치란의 자취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역사를 상고하는 길밖에 없다.
세종대왕의 말씀이다. 우리가 겪고 경험한 모든 치란의 자취는 ´조선왕조실록´에 아주 소상하게 적혀있다.
그러므로 정치를 잘 하려면, 기업을 제대로 이끌어가려면,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내용을 살펴서 성공(治)한 것은 택하고, 실패(亂)한 것은 버리면 된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판·검사들도 이 간단한 이치를 터득하지 못한 탓에 실패만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참담한 것도 그 때문이다.
비참한 회상이지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다섯분의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린 지난 27년 동안 단 한 사람의 양식있는 대통령도 만나지 못한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심정은 정말로 참담하다.
본인이 아니면 그 가족들이 모두 감옥엘 다녀왔다. 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전임 국세청장 다섯 분이 뇌물 수수로 수감 중이다.
국회의 여러 회의장에는 책상에도 허공에도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데모하듯 회의를 하더니, 끝내 해머, 전기톱 등이 등장하는 난장판을 버렸다.
세계의 언론은 한국의회의 고질적 폭력을 대서특필했다. 그뿐인가. 퇴임하는 대통령이 국가문서를 집으로 들고나갔다. 이런 예가 다른 나라에도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해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이 엄연한 현실이 경제가 부실한 때문인가. 아니다. 나라의 품격이 무너진 때문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나라에도 국격이 있어야 한다.
졸부(猝富)가 친구들로부터 버림받고, 따돌림을 받는 이치와 같이 나라도 ´국격´이 없으면 국제사회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따돌림을 받게 된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의 처지가 그렇다.
비근한 예가 되겠지만, 이웃 나라 일본에는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을 수상한 사람들이 16명이나 있다.
우리의 경제수준이 일본의 반 정도라면 산술적 계산으로는 우리에게도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 수상자가 6명 정도는 있어야 된다.
그런데도 단 한 사람도 없다. 원인규명은 간단하다. 우리의 지식인집단이나 정부에서는 해야 할 일을 하질 않고, 하지 않아야 될 일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안다. 교수는 교수대로, 변호사는 변호사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특히 역사에 대해서만은 ‘나름대로’ 알고 있다는 투의 착각 속에서 살지만, 조선사에 대한 상식은 참담한 도를 넘어서 몰상식에 가깝다.
틀리게 아는 것을 지위와 신분을 동원하여 밀어붙이려는 오만보다는 차라리 모른다고 실토하는 게 여러 사람을 위해 득이 된다.
새해는 모든 공직자는 물론, 모든 지식인들이 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일에 매달리는 첫 해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빌어본다.
글/신봉승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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