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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는 삼전도가 될 수 있다 ...그럼 위화도는?
연평도가 삼전도 될때 위화도는 과연 중국의 영향권 밖에 있게 될까?
 
김기백논평 기사입력 :  2010/12/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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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전문을 그대로 옮겨온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 정의길씨의 칼럼에 대해 될수록 요약해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의 남한집권세력들의 친미일변도의 맹목적 사대주의는 마치, 송시열로 대표되어질수 있는 조선시대의 맹목적 親明사대주의자들을 연상케하고 있는,대단히 아둔하고도 위험하다못해 숫제 무지몽매하다고 밖에 할수 없을만큼 애시당초부터 개념자체가 없는 무뇌아집단의 행태라는 사실자체에는 민신발행인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는것.
 
둘째, 그럼에도 미국이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는 반면 중국은 당시의 청나라의 기세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 문자그대로 욱일승천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미국이 적어도 수십년내에 혹은 21세기가 끝나기전에,  당시의 명나라처럼 완전히 멸망해버릴정도로 급속히 붕괴해버리지는 않을것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명나라와 지금의 미국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임이 분명하다는것.
 
셋째, 미국이 급속히 몰락내지 붕괴하느냐 앞으로도 상당기간 글로벌 슈퍼파워의 한축으로 건재하느냐에 관계없이,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한국이 중국대륙의 영향력하에 있어왔다는 것은 그누구도 부인할수 없으며, 앞으로 최소한 1-2백년은 갈수록 중국의 영향력이 과거 어느시기 못지않게 점점더 심대해질것이라는 사실 또한 누구도 감히 부정할수 없다는것.
 
넷째,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한국(남한)이 급격히 미국을 배척(?)하거나 미국의 활용가치를  사실상 폐기처분(?)해버리고  그역시 맹목적 사대주의이기는 마찬가지인 親中일변도의 대외노선으로 돌아서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는 둘째치고 , 그러한 노선이 과연 현명한 외교전략인지에 대해 아래의 정의길 칼럼은 명쾌하게 정리 해놓지 못하고 있다는것.
 
다섯째, 아래 정의길 칼럼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임진강이남에 위치한 한국(남한)의 연평도만을 병자호란 당시의 삼전도로 설정해놓음으로서, 마치 임진강 이북(북한)땅은 중국의 무지막지한 횡포와 패권주의의 영향력밖에서 중국과어깨를 나란히(?)하면서 한오백년 중국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며 더불어 태평성세를 구가할수 있기라도 한, 한국(남한)의 운명과는 전혀 무관한 별세계에 노니는 국가라도 되는양 필자 자신이 착각하고 있거나  짐짓 간과내지 외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의 칼럼은  요컨대, 어떤경우에도 남북한 어느한쪽만의 치욕적 패망과몰락은 있을수 없는 시나리오라는 사실,  남북한은 결국 좋든싫든 운명공동체 일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지적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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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정의길 칼럼에서 그 못지않게 대단히 중요한 근본적 문제는 문제의 본질을 보는 관점과시각자체가 애초부터 편향적이다보니 문제의 진정한 총체적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현재 한국 집권세력들의 실로 단순하기 이를데 없는 이분법적 친미일변도의 외교노선에 대한 감성적 반감과 그로인한 장차의 치명적 대재앙이 들이닥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대단히 불길한 동물적 예감정도를 표출하고 있는수준에서  맴돌고 있는것은  오히려 당연한것이며,따라서 막연하게 추상적인 걱정과우려만 하고 있을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대단히 위험천만한 국제역학적 현실에서 명확히 탈피할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알맹이(구체적=실질적 대안내지 정책제시)가 없는것 또한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일곱째, 실로 백척간두 정체절명의 위기라는 표현만으로도 부족할만큼 총체적 국난에 처해있는 한국사회의 진정한 위기는 소위 진보진영에 속한다 할 바로 아래 칼럼의 필자인 정의길씨만이 아니라, 그래도 지각있는 소위 보수우파진영일각에서도 현재의 한국 외교노선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걱정만 난무하는 가운데 장님코끼리 더듬기식의 암중모색만 하고 있을뿐, 한국이 마땅히 취해야 할 외교-군사전략의 방향과노선에 대한 구체적 대안내지 확고한 계책과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경우는,  이른바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부지기 수라 할만큼 많지만  제대로된 진짜 전문가는 정치인-관료-학자-언론인-논객을 막론하고  보수-진보를 통틀어도 사실상 全無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단기4343(서기2010)년 12월26일  
인터넷 민족신문 발행인 김기백
 
http://www.minjokc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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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연평도는 삼전도가 될 수 있다 / 정의길


한겨레
» 정의길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
병자호란 때 인조는 청 태종에게 세번 큰 절과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하며 삼전도에서 항복과 용서를 빌었다. 그 자리에는 ‘대청황제공덕비’, 이른바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잠실 롯데월드 석촌호숫가로, 현재 한국의 풍요와 환락을 상징하는 유흥촌이다.
 
 
 
우리의 처지도 그만큼 좋아진 것인가? 삼전도는 지배층의 완고한 이데올로기 집착과 그릇된 정세판단의 산물이다. 그때 동아시아의 격변하는 패권질서에 눈감고 허상의 명분에 집착한 재앙이다. 명과 청의 패권다툼에 속절없이 빨려들어간 참화이다. 그 삼전도가 연평도로 살아나고 있다. 
 

연평도 역시 현재 동아시아 패권질서 격변의 산물이다. 단순히 남북한 관계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는 패권다툼의 최전선이다. 병자호란 때나 지금이나, 조선과 한국은 그 패권다툼에서 비켜서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패권다툼의 마당 구실을 자처하고 있다. 
 

정묘·병자호란 때 화이론과 명에 대한 ‘부모지국’의 ‘재조지은’ 사대관계는 지금의 친미반북주의와 ‘한-미 혈맹’ 관계와 유사하다. 중화를 숭상하고 오랑캐와는 같은 하늘을 질 수 없다는 화이론, 부모의 나라 명이 임진왜란 때 파병해 조선을 거듭나게 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식자층들의 인식 앞에 조선의 국력, 명의 쇠락과 청의 굴기 등은 결국 아무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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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 관계는 ‘명의 재조지은을 배반하고 오랑캐와 화친한’ 광해군 타도를 명분으로 내건 인조반정 이후 파탄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이 ‘북한에 퍼주기를 하고, 한-미 동맹을 약화시켰다’며 들어선 이명박 정부 이후 한-북·중관계와 닮은꼴이다. 중국은 이명박 대통령 방중 때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향후 한국과의 관계를 시사했다. 

정묘호란으로 명보다는 청과의 관계 구속성이 이미 커졌지만, 조선은 여전히 화이론과 재조지은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며 사신교환에서 의전문제 등으로 청과 사사건건 알력을 빚었다. 중국과 수교한 이후 한국은 이제 대중 수출액이 대미·대일 수출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경제에서는 미·일보다 관계 구속력이 더 크다.

천안함 사건 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방중하자, 한국 정부는 중국대사를 불러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외교적 대담성’을 보였다. 중국은 당연히 공개적인 강력한 반발로 되받았다.


조-청 관계는 명의 장수 공유덕과 경중명이 청으로 귀순하는 사건으로 파탄났다. 군선을 빌려달라는 청의 요구를 거절하던 조선은 이들을 추격하라는 명의 요구에 순응해 식량과 수군을 제공해 청과 전투까지 벌여, 병자호란으로 치닫는다. 천안함 사건 뒤 한국은 미국의 조지워싱턴 항모를 서해에 초치한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중국 코밑에서 감행했다. 남북한 관계를 미-중 패권다툼의 마당으로 제공한 계기였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 이래 순조롭던 중국 등 북방세력과의 관계는 이제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립구도로 바뀌었다. 남북한은 미·일 대 중·러라는 남방해양세력 대 북방대륙세력의 첨병 노릇을 한다. 연평도 포격훈련 재개를 놓고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소집은 이런 구도에 도장을 찍었다.


서해에서 한-중 어로분쟁은 중-일의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을 방불케 하며 중국은 강경자세를 보인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연평도 포격훈련 재개를 놓고 “지금이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던 (19세기 말) 조선시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현재 북한과의 전쟁불사론은 병자호란 전야 조정에서 드높던 척화론과 다른 것일까?

“내가 대국에 화호(和好)를 의탁한 지 10년인데 이제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내가 어둡고 미혹하기 때문에 스스로 천토(天討)를 재촉하여 만백성이 어육이 되게 한 것이니, 죄는 나 한 사람에게 있다.”(‘삼전도비’에서)

청의 강박이기는 했지만, 인조는 절절한 후회를 삼전도비에 남겼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이명박 대통령은 어육이 된 국민을 앞에 두고 어떤 비를 남길 것인가?

정의길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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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삼전도비도 우리의 역사
[길거리 취재기 11]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삼전도비
이재환(fanterm5)
최근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사적 제101호 삼전도비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삼전도비는 본래 이름인 '대청황제공덕비'가 말해주듯 결코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님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비석의 '수난'도 비석이 지닌 역사만큼이나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실제로  고종황제 시절인 1985년에는 삼전도비를 강물에 버리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1913년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조선강점의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비석을 다시 찾아 세웁니다. 이어 1945년 광복직후 비석은 곧바로 다시 땅속에 묻히는 수난을 겪습니다. 하지만 1963년 비석이 다시 발견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삼전도비
ⓒ 이재환
삼전도비
 
혹자는 삼전도비는 역사적 치욕이니 만큼 비석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삼전도비는 있는 그대로 잘 보존해야 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입니다.
 
그러나 삼전도비는 정치나 사회적 이유 등 각종 사연으로 화가 치민 서민들이나, 역사적 굴욕을 참지 못하는 일부 '피끓는 시민'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난을 당했습니다. 비석에 발길질하는 것은 애교 수준이고, 최근까지도 비석에 심한 낙서를 하는 등 극단적인 훼손 사례도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치욕도 되새김하면 교훈이 된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비석을 콤플렉스 덩어리로만 생각해서는 안될 시점인 듯 보입니다. 일제가 비석을 다시 찾아 세웠다는 이유로 자존심 상해 한다거나, 지워야할 역사라는 등의 인식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전도 굴욕의 원인인 병자호란의 배경은 조선을 형제국으로 생각했던 만주족의 국가 청나라를 철저히 배척한데서 비롯합니다. 이는 잘못된 역사관과 정치적 관점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 때문이기도 합니다. 당시 조선 조정이나 유학자들은 명나라 즉, 중국의 한족을 조선의 기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이 한족의 지배를 당한 기자조선의 기자를 선조로 모시며 제사를 지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인 듯 합니다. 
 
이처럼 사대주의에 푹빠져 있던 조선은 고구려(혹은 고조선)의 후손 중 하나로 추정되는 만주족(청)이 내민 손을 끝끝내 거부합니다. 이에 앞서 임진왜란(1592) 당시 청은 조선에 '형제국 대우와 함께 지원군 파병'이라는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조선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이 철저한 사대주의를 바탕으로 명나라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선의 태도에 격분해 있던 청나라는 결국 병자호란(1636)을 일으킵니다. 그 결과 조선의 왕 인조는 청나라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합니다. 자승자박인 셈입니다. 삼전도비는 위정자들의 잘못된 정치적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적인 비석'입니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비석을 보며 역사적인 치욕만을 떠올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비석을 보면서 삼전도비의 '굴욕'이 주는 교훈을 수시로 되새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삼전도비가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역사왜곡의 차원을 넘어 '역사적 교훈'을 훼손하는 심각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한다면, 일본이 심심하면 들고나오는 역사왜곡문제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할 명분을 잃게 됩니다. 또, 중국의 동북공정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겠지요.
 
우리조차 역사를 왜곡하는 마당에 다른 국가들의 역사왜곡을 비판한다는 것은 아전인수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는 논리도 역사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굳이 그들의 전철을 밟을 이유는 없겠지요. 
 
중국 아닌 청에 당한 조선의 '굴욕'
 
삼전도비는 그것이 비록 치욕 스러운 것일지라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삼전도 굴욕은 조선이 중국(명나라)에 당한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조선을 형제국으로 여겼던 북방의 새로운 패권국 청(만주족)에게 당한 일종의 '정치-군사적 보복'이란 점입니다.
 
  
청태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조선의 인조임금
ⓒ 이재환
삼전도굴욕
그동안 삼전도비를 훼손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아마도 청나라와 중국을 동일시하면서 격분한 듯합니다.
 
그러나 삼전도비의 당사자는 당시의 중국인 명나라가 아니라, 명과 중원의 패권 놓고 한판 전쟁을 벌여 결국에는 명을 멸망시킨 신흥강국 청나라였습니다.
 
한족의 명나라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그 원류나 언어적인 측면에서 전혀 다른 국가입니다. 물론 현재 중국에는 청나라가 없습니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한족에 흡수되어 그들의 언어(만주어)와 문화를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삼전도비를 훼손하려 드는 사람들은 '삼전도비=중화비'로 착각하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청나라를 야만족이라며 무조건 배척한 조선 위정자들의 인식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낡은 생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실제로 청나라 역사서 만주원류고는 "청과 조선은 그 원류가 같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이전, 청이 조선에 선뜻 손을 내밀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청나라는 애초부터 조선을 형제국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청의 호의를 무시하며 끝내 그들의 신경을 건드린 조선은 결국 전란에 휩싸이며 형제국이 아닌 신하국으로 전락합니다. 그로 인해 조선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청나라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조선이 명(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버리고, 언어나 민족의 친연성 측면에서 명보다는 훨씬 더 가까웠던 청나라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더라면, 병자호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앞서 벌어진 임진왜란(1592)의 조기 종결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조선외교의 뼈아픈 실책, 삼전도비
 
따라서 삼전도비는 조선 외교의 실패에 대한 '냉정한 기록'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셈입니다. 그것은 또 치욕스럽스다고 무작정 삼전도비를 철거하거나 훼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삼전도비는 지금도 여전히 잘못된 외교적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전도비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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