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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정당이오? 다들 공천·장관자리 생각 뿐인데…”
헌정회 원로회의 최고령 99세 송방용 위원
 
문화일보 기사입력 :  2011/04/1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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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한나라당이 정당이오? 다들 공천·장관자리 생각 뿐인데…”
박근혜, 인기보다 더 중요한 게 ‘나라’ 유념해주길
박민기자 minp@munhwa.com | 게재 일자 : 2011-04-15 11:32 요즘페이스북구글트위터미투데이
▲ 송방용 헌정회 원로위원이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국회 헌정회관에서 한국의 역대 대통령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 송방용 헌정회 원로위원이 제3대 민의원이던 1954년 11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사오입 개헌 투표시 암호투표가 이뤄졌다고 폭로하면서 해당 투표용지를 공개하는 모습. 송방용 원로위원 제공
헌정회 원로회의 최고령 99세 송방용 위원

존경스럽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송방용(99) 헌정회 원로위원은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허물어버렸다. ‘아무리 정정하다지만 나이가 있는데…’라고 생각했던 게 송구스러웠다. 곧은 자세와 카랑카랑한 목소리, 보청기가 필요없는 청력과 책을 읽을 때만 안경을 빌린다는 시력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건강은 신체건강을 넘어섰다. 놀라운 기억력과 질문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판단력, 답변에서 보여지는 치밀한 논리와 여전히 타협을 모르는 소신은 젊은사람이 부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평탄한 삶을 살아온 건 아니다.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태어나 청년시절 ‘브나로드(농촌계몽)운동’에 정열을 쏟았고 창씨 개명 거부로 수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 후 무소속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그는 곧바로 6·25전쟁을 맞았고 전후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도와 맞서야 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온갖 질곡을 100년에 걸쳐 온몸으로 부딪혀온 셈이다.

이젠 적당히 세상과 세월에 타협한다고 비난할 사람이 없을 만하다. 그러나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국회 헌정회관에서 만난 그는 아직도 세상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모르는 현안이 없었고 논란 중인 어젠다에 대해서는 소신에 찬 해법을 내놓았다. 과거에 대한 평가도 냉정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답변은 없었다. 인터뷰가 계속될수록 이런 원로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이 푸근해졌다.

―지난달에 백수연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건강 등의 문제로 백세까지 살지 못하니까 백수연을 미리 하곤 했나 봅니다. 생일이 음력으로 2월18일, 양력으로 3월22일인데 별도로 잔치를 하면 돈이 드니까 헌정회 총회를 마친 뒤 총회 참석자 500여명과 함께 백수연을 했습니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고향으로 내려가 14년간 농사를 지으셨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진학한 것은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1936년 졸업했는데 전쟁(중일전쟁)이 시작되기 1년 전이어서 때가 나빴습니다. 그래서 미국유학을 접고 뭘해야 되느냐 고민했죠. 대학 재학시절 이광수씨의 ‘흙’ 소설을 열심히 읽었는데 주인공인 허숭이 브나로드운동을 했죠. 그래서 저도 농민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당시 제가 수석으로 졸업해 주위에서는 취직하라며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선친께서 ‘밥 먹을 것 있는데 굳이 취직할 것 없지 않느냐’며 지지해주셨습니다.”

―선친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구한말 여수 군수를 하셨는데 일제 통치 하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상투도 안 자르고 창씨개명도 안 하셨습니다. 저도 아버님 핑계대며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유치장에 몇 번 갔다 왔습니다.” 열정에 차 계몽운동을 하던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 그려지면서 어떻게 정계에 입문했는지 궁금해졌다.

“제가 초기에 가르친 학생들은 대부분 15세 안팎이었는데 14년간 계몽운동을 하고 나니 제자들이 서른 살 전후가 됐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출마를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제헌의회 때는 반쪽 정부라는 생각에 국회의원을 하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 흐름을 보니까 미·소 냉전시대가 오래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2대 국회 때 출마했습니다.”

―2대 국회는 6·25전쟁으로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당시 국회가 지금은 헐린 중앙청에 있었는데 등록을 하러 갔더니 ‘본인이 와야 한다’며 거부했습니다. 결혼식 때 마련한 양복 한 벌을 선거기간 내내 입은데다 자전거 타고 마이크도 없이 육성으로 선거운동을 했으니 제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아무리 ‘내가 송방용이다’고 말해도 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옷은 한 벌 해야겠다고 명동에서 옷을 맞췄는데 6월25일에나 찾을 수 있다고 해 개원할 때는 다 떨어진 양복을 입고 갔습니다. 그런데 25일 명동에 옷을 찾으러 갔는데 검은 지프차 한대가 달려오면서 ‘휴가장병은 원대복귀하라. 공산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했다’고 방송을 하더라고요. 그 다음날 국회를 열어 사수결의대회를 했는데 정부가 서울을 비워버렸죠, 국회도 수원을 거쳐 대전으로 옮겨갔습니다. 저도 마포에서 강을 건너 수원을 거쳐 대전으로 갔는데 이번엔 순경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으면 국회에 못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국회 직원을 나오라고 했는데 마침 조봉암 선생이 나와 국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역사책에서나 만나는 조봉암씨와 같이 의정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그의 나이를 재삼 생각하게 했다.

―최근 조봉암씨에 대해 무죄판결이 났는데 조봉암씨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습니까.

“국회가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 조봉암씨와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제가 조봉암 선생에게 ‘공산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조 선생께서 ‘공산주의는 우리나라에서는 안 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물론 그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완전히 찬성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진보당을 만들었죠. 진보당 만들 때 저에게 참여하라고 했지만 저는 반대했습니다. 당시 제가 경제분과에 속해있어 경제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우리나라 같이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인 상태에서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이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먹고 입을 게 없는 상황에서 분배문제가 얘기될 수 없다는 것이었죠.”

―3대 국회는 어땠습니까.

“이승만 대통령 세력이 너무 강하니까 견제를 하는 것이 야당의원으로서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3선 개헌투표 과정에서 ‘암호투표’를 했는데 제가 그 사실을 공개해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매수한 의원들에게 투표용지에 특정한 방식으로 표시를 하도록 한 거죠. 제가 김영상 의원 투표용지를 증거로 공개했는데 이정재와 같은 정치 깡패들이 2층을 점령하고 있었는데도 방청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등 난리가 났죠. 그래서 사사오입으로 개헌안이 통과된 뒤 호헌동지회를 만들어 총무부장을 맡았습니다.” 3선 개헌에 맞섰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평가가 궁금해졌다.

“저는 이 박사와는 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박사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공화국으로 건국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번영도 없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제도권 정치인 중에서도 종북성향을 보이는 의원들이 있습니다.

“종북주의자는 대한민국 사람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데서 출발해야지 대한민국을 무시한다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이 잘한다면 어느 정도 동정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죠. 그러나 3대 세습으로 가는 나라는 세계를 통틀어 없지 않습니까.”

―지난 3년간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꼽는다면.

“이 대통령이 경제문제에 애를 많이 썼죠. 주요 20개국(g20)까지 올려놓은 것은 평가할 만합니다. 반면 인사에서 너무 자기와 가까운 사람 쪽으로 기울지 않았나 생각하고 지금도 염려하고 있습니다. 인사는 이 대통령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5000만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과거에 법을 무시했으면 퇴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여당은 국정을 책임지는 정당인데 친이·친박으로 갈라져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한나라당이 정당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로 몰아내려는 작업들만 하고 있지 뭉쳐서 국사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옳은 정치는 아닙니다. 정치는 국민이 어떻게 하면 편히 살까 고민해야 하는데 다음에 공천이 되느냐. 내 편이 대통령이 되느냐, 그래서 장관 한번 해먹을 수 있느냐 생각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논조라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그의 비판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할 것 같았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나 신공항 문제와 관련 현정부와 대립해왔는데 차기 대권 후보로서 박 전 대표를 평가해주십시오.

“지금 우익진영에서 박 전 대표만큼 표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도 우익진영에 있기 때문에 답변에 신중을 기해야겠습니다. 그분에게 부탁을 한다면 인기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고 그건 바로 ‘나라’라는 걸 유념해달라는 겁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발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질문 중 유일하게 ‘신중한 답변’을 했지만 날카로움이 줄어들진 않았다. 박 전 대표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떨까.

“그분이 장기집권을 한 것은 아쉽지만 조국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한 것만큼 인정해줘야 합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근대화는 어려웠을 겁니다. 제가 1960년대 참의원을 했는데 민주당은 신구파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싸움을 했습니다. 의사당 앞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데모가 이어졌죠. 그 상태를 오래 뒀으면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5·16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박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다고 봅니다.”

―역대 대통령을 모두 직접 보셨는데 순위를 매기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큰 공을 세운 분은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그다음이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이승만 전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책은 적중했습니다.” 그리곤 답변을 멈췄다. 사실 3등이 누굴까 가장 궁금했는데 기다려도 더이상 답변이 이어지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갔지만 굳이 ‘3등은 누구냐’고 묻자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글쎄요. 만족할 만한 분이 보이질 않습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최근 박 전 대표에 이어 지지율 2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그 사람은 별로 신통치 않게 봅니다. 차기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그간 이뤄놓은 부를 깎아 먹을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는 좌파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이 좀 더 커진 뒤에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차기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저는 우익 쪽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된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다만 우익 쪽 후보들이 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대중적 인기라는 악몽에서 벗어나 ‘이건 이래서 어렵다’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한나라당은 나라가 이렇게 돼서는 안 되겠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 거지, 한나라당 의원들이 잘해서 유지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인터뷰 = 박민 전국부장 min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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