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불량 식품 파동을 일으키고 '짝퉁 천국'의 오명 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거부하고 21세기 새로운 패권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
제자백가 철학을 전공하고 현대 중국사회를 연구해온 이상수 씨가 지은 '아큐를 위한 변명'(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5천 년 역사 속에서 이처럼 상반된 모습의 중국 문명을 일궈온 중국인의 호방하면서도 졸렬한 집단심성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반만년 중국사는 대륙의 패권을 둘러싼 쟁탈과 분열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중원의 원심력이 구심력을 압도하는 시기, 다시 말해 뭉치려는 힘보다 터져나가려는 힘이 더 강력한 분열의 시기가 닥쳐오면 영웅들은 천하를 얻고자 마음을 열게 된다.
'열린 마음'으로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심성인 '하오커(好客) 정신'과 전국시대부터 유행한 '선비 기르기(養士)'의 풍조가 이때 생겨나는 데 저자는 이를 '대륙 기질'이라 부른다.
그러나 군웅할거의 분열기를 통과한 권력자는 구심력을 지키고자 가혹한 전제통치로 신민의 마음을 닫게 하는데 여기에서 '아큐 기질'이 생겨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큐'는 중국 작가 루쉰(魯迅)의 중편소설 '아큐정전'의 주인공이다. 그는 현실의 폭압에 철저하게 굴종하면서도 자기기만적 만족에 젖어 살아가는 전통적 중국인의 몽매함과 노예근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저자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아큐'의 인간형은 대륙 기질이 전제통치의 폭압에 억눌렸을 때 왜곡돼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 이는 외부의 압박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항복한 상태이며,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정신 승리법'이기도 하다.
저자는 '아큐적 속성'은 하층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직 중국의 황제만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은 천자(天子)라고 믿는 허위의식이야말로 오히려 '아큐적 인간의 정점'이라고 꼬집는다.
예컨대 50만 대군을 이끌고도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당태종 이세민이 "짐이 비록 안시성 성주와 싸워서 이기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짐이 천자임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양만춘에게 비단 100필을 하사하고 돌아간 것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정신 승리법'에 빠져든 자기기만적 아큐 기질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인의 이 같은 집단심성은 왕조체제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현재의 중국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의 분열을 막으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할 뿐 아니라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통일제국을 꿈꾼다면 그것은 황제 시대의 통치공학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기에 오히려 다양한 사상들이 태어나 지적으로 풍요로웠다"면서 "중국이 다시 이런 개방성과 포용력을 갖고 온전한 '대륙 기질'을 회복할 때 '세계의 공장'을 넘어 진정한 '세계의 중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