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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채의 촌사람, 쥐가 머무는 곳을 보고 깨달아 대처로 나가 학문을 배우다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 일등공신이었으나 奸臣 趙高에게 농락당해 비참한 죽음을 당한李斯이야기(1)
 
양승국 기사입력 :  2009/03/0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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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채의 촌사람 이사가 쥐가 머무는 곳을 보고 깨달아 대처로 나가 학문을 배우다
 
 
2009-02-17 15:56:51  
  작성자: 양승국 조회 : 218  추천 : 3   

 
 
 이사 이야기-2

이사는 초나라 상채(上蔡) 사람이다. 젊은 시절 군의 하급 관리가 되었는데 숙소의 변소에 서식하고 있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고 살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그때마다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다. 이사가 군청의 창고에 들어가 그 안의 쥐들을 보았는데 쌓아놓은 곡식을 먹고 커다란 대청 아래에서 살면서 사람이나 개를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에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 쥐도 그 거처하는 곳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사람의 경우에는 특히 머물러야 할 곳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사는 순경(荀卿)*2을 찾아가 제왕(帝王)의 술을 배웠다. 이윽고 공부를 마친 이사는 초나라 왕은 받들기에 부족하고 산동의 육국은 모두가 국력이 약해 공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서쪽의 진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다. 순경에게 하직인사를 하며 말했다.

 

“ 제가 듣기에 ‘ 기회를 잡았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잡아야한다’ 했습니다. 지금은 만승의 제후들이 바야흐로 상쟁하는 시대라 유세객들이 각국의 정사를 맡아 보고 있으며 진왕은 천하를 병탄하고자 하여 제왕(帝王)을 칭하고 있습니다. 이때야 말로 평민출신의 정치가나 유세가들이 사방으로 분주하게 치달려 그들의 갖고 있는 포부를 펼칠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으로써 가장 큰 치욕은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며, 가장 슬픈 일은은 빈궁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천하고 곤궁한 처지에 오래 있으면서 세상을 비난하고, 이를 꾀하는 것을 미워하며 스스로는 세상에 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고상한 척하는 것은 선비가 취할 진정한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으로 가서 진왕에게 유세를 하려고 합니다. ”

 

주1. 상채(上蔡)/ 지금의 하남성 상채시(上蔡市) 서남에 있었던 전국시대 때의 고을로 원래 채읍(蔡邑)이다. 주무왕이 자기의 동생 숙진탁(叔振鐸)을 이곳에 봉했다. 후에 채평후(蔡平侯)가 나라를 신채(新蔡)로 옮겼다가 채소후(蔡召侯) 때 주래(州來)로 다시 옮겨, 주래(州來)의 이름을 하채(下蔡)로 불렀다. 이에 원래의 채읍 이름을 상채(上蔡)로 부르게 된 것이다. 채나라는 춘추 말 오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할 때 오나라 편에 서서 초나라를 궁지에 몰았다가 국세를 회복한 초소왕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땅은 초나라 땅에 병합되었다.

 

주2. 순경(荀卿)/ 기원전 313년에 태어나서 238년에 죽은 전국시대 때 사상가이며 교육가이다. 통상적으로 순자(荀子)라 불리며 이름은 황(況)이다. 조나라 출신으로 나이 50이 넘어 학문을 배우기 위해 제나라에 갔다. 직하(稷下)에 모여있던 학자들은 순경을 장로로 존경했다. 후에 초나라로 가서 춘신군(春申君)에 의해 란능령(蘭陵令 : 지금의 산동성 창산현(蒼山縣)) 란릉진(蘭陵鎭))에 임명되었으나 후에 다시 주위 사람들의 참소를 받고 조나라로 돌아갔다. 조나라는 순경을 상경(上卿)으로 임명했으나 다시 초나라로 돌아가 란능령(蘭陵令)이 되어 그곳에서 저술활동을 하며 생애를 마쳤다. 한나라의 한비자(韓非子)는 이사와 함께 동문수학한 순경의 제자다.

 

순자는 춘추 이후의 각 학파를 모두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 학설들을 집대성하였다. 그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설을 따라 왕도를 숭배하고 어진 사람을 뽑아 정치를 행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순자의 학설은 공맹과 많은 차이가 있다. 공자는 인(仁)을 맹자는 인의(仁義)를 주창했으나 순자는 예(禮)가 인간 삶의 기본이라고 했으며, 맹자의 성선설에 반하여 성악설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란 ‘나면서부터 이득을 탐하고 (生而有好利)’ ‘나면서부터 인간의 눈과 귀는 욕망으로 채워져 있다(生而有耳目之欲)’이라고 했다. 그는 성악설에 근거하여 예(禮)와 법(法)에 의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했으며 인간의 교화를 위해서는 후천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 순자 권학편에 ‘푸른색은 쪽에서 얻어낸 것이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언 것이지만 물보다 더차다, ( 靑取之于藍, 而靑于藍; 氷, 水爲之, 而寒于水), 즉 청출어람(靑出於藍)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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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李斯) 이야기-1 2009-02-16 11:41:37  
  작성자: 양승국  (121.♡.141.36) 조회 : 289  추천 : 4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여 제국을 건설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가 말년의 단 한 번의 판단 착오로 자기가 이루어놓았던 성과물을 모두 무너뜨리고 자신은 멸족당한 사기 전번에 걸쳐 가장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이한 사람이 이사입니다. 초나라 변경의 상채라는 곳에서 요새로 말하면 면서기와 같은 하급관리를 하다가 자기 집의 변소 간에 사는 쥐와 관청의 창고에 사는 쥐의 상반된 행동에 느낀 바가 있어 그 즉시 관리직을 그만 두고 한비와 함께 순자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학문을 마친 이사는 앞서의 쥐에게 느낀 바대로 당시 국력이 가장 강했던 진나라에 들어가 여불위의 문객이 되었습니다. 이사가 쥐를 보고 자기가 있을 곳을 선택했다는 성어는 鼠在所居 人固择地(서재소거 인고택지)라고 합니다.

 

즉 ‘쥐도 거처하는 곳에 따라 다르니 사람이야 말로 머무를 데를 택해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이윽고 여불위의 소개로 진나라의 관리가 된 이사는 당시 정국이라는 토목기술자가 한나라에서 온 간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진나라 본지인들이 외국에서 들어와 진나라 조정에서 벼슬을 살고 있던 타국출신의 관리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에 진시황이 축객령을 내리자 같이 쫓겨나게 된 이사가 상소문을 올려 진나라가 외국에서 온 우수한 인재들을 쫓아내는 것은 진나라의 힘을 빼앗아 적국에게 바치는 것과 같다고 하며 태산이 높은 것은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은 것이며 황하의 물길이 깊은 것은 한 줄기의 작은 실개천의 물도 마다하지 않고 포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시황이 뉘우치고 축객령을 취소하고 이사를 객경으로 임명합니다. 이사의 논지는 개방정책만이 진나라의 국력을 키워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설파한 것입니다.

 



이사는 후에 조고의 모함으로 죽기 직전에 호해에게 자기의 공적을 열거했습니다.

 

1. 황금과 벽옥을 유세객에 주어 육국에 몰래 보내 진나라를 위해 제후들에게 유세를 행하고 안으로는 은밀히 군사들을 키웠다. 그 결과 한나라는 두려움에 떨게 했고, 위나라는 쇠약하게 만들었으며, 연나라와 조나라를 격파하고 제나라와 초나라를 멸하여 마침내는 육국을 진나라에 겸병하고 그 왕들을 포로로 잡아와 진왕을 천자의 자리에 세웠다.

 

2. 북으로는 호(胡)와 맥(貊)을 쫓아내고 남쪽으로는 백월(百越)을 평정하여 진나라의 강성함을 이족들에게 까지 떨치게 했다.

 

3. 거마의 규격과 복식 및 예기 등의 규격들을 바꾸었으며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시켜 천하에 반포함으로 해서 진나라의 이름을 세웠습니다.

 

4. 치도를 건설하여 순행을 나가 세상을 구경하는 일을 일으켜 진시황을 득의양양하게 만들었다.

 

5. 형벌을 완화시키고 부세를 줄여 선황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만민의 주인으로 추대되어 사후에도 그 공덕을 잊지 않도록 했다.

 


그랬음에도 진시황이 숭행 중에 마차 안에서 죽자 조고의 흉악한 계략을 물리치지 못하고 찬탈의 모의에 가담함으로 해서 일개 환관에 의해 농락당해 비참한 최후를 마친 것입니다.

 

이사가 마지막 순간 자기의 본분을 지켜 조고의 음모를 분쇄했다면 이사의 공적은 800년 주나라 기업을 공고히 한 주공이나 소공과 같은 반열에 올라 자기가 저술한 사기에도 비운의 주인공 이사열전이 아니라 주공, 소공, 소하, 진평 등과 같은 세가의 반열에 올렸을 것이라고 사마천은 한탄했습니다.

 

이사와 같이 작록과 같은 조그만 이익에 어두워 지혜가 혼미해 지는 일을 利令智昏(이령지혼)이라고 합니다.


번역본은 5회 정도로 나누어 연재하겠습니다.




출처:http://www.ta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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