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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북한이 다시 추석 밥상에 오르고 있다. 2006년 핵실험 이래 올해처럼 북한이라는 유령이 남한 국민의 눈앞에 가까이 온 적은 없다. 2006년 북한은 성군(聖君)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민족의 경축일(10월 9일)에 핵실험을 했다. 2010년 북한은 영웅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당한 민족의 애도일(3월 26일)에 천안함을 폭침시켰다. 천안함은 단순한 ‘또 하나의 테러’가 아니다. 북한에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상한 일이 시작됐다는 예고편일 것이다.
한국전쟁 60년 만에 북한은 가장 취약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천안함 이후 ‘미스터리’가 이어지고 있다. 6월 2일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이제강이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북한은 외부에 알렸다. 이제강의 핵심 업무는 김정일 권력의 관리와 후계 준비라고 한다. 북한 관리를 지내다 탈북한 김태산씨는 그가 암살당했을 거라고 말한다. “북한에서 고위 당간부는 반드시 기사가 모는 차를 탄다. 일종의 감시 시스템이다. 그런데 80 먹은 노인이 새벽에 혼자 차를 몰다 사고로 죽었다고?” 이제강이 장성택-김정은 구도에 걸림돌로 지목됐을 거라는 얘기다.
8월 17일에는 북한 공군의 미그 21기 한 대가 중국 땅을 200㎞나 날아들어와 추락했다. 중국은 서둘러 “계기 고장”이라고 했지만 의문이 한둘이 아니다. 8월 말 김정일은 갑자기 3개월 만에 다시 중국에 갔다. 68세의 김정일은 불편한 다리를 끌며 아버지 김일성의 혁명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이는 도대체 무엇을 알리려는 미묘한 전조(前兆)인가. 9월 중순엔 당대표자회가 열린다고 지방에서 대표들이 잔뜩 평양에 모였다. 그런데 행사가 돌연 연기됐다. 이어 김정일이 원자바오 중국 총리에게 김정은 후계설은 “서방의 뜬소문”이라고 부인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한국인에게 가장 영향을 미칠 변수는 북한의 급변사태일 것이다. 부자나 서민이나 북한의 지진파는 개인의 생활을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국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제일 수 있다. 이번 추석에서는 ‘북한’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보면 어떨까.
군량미가 100만t이라는데 그동안 퍼주었던 쌀이 군대로 간 건 아닌지, 달러로 핵을 개발하고 쌀로 군대와 당간부를 먹인다면 그런 정권을 지원해야 하는지, 자유와 진실의 바람이 들어오면 개인숭배의 거짓이 밝혀져 정권이 위험할 텐데 과연 김정일이 개혁·개방을 할 수 있을지, 김정일 정권을 압박해 새로운 세력이 개혁·개방을 하도록 유도하는 선택은 왜 안 되는 것인지… 남한 국민이 고민해보자.
최악(最惡)을 불사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북한을 바꿀 수 있는데 ‘불바다’ 위협에 벌벌 떠는 패배주의가 옳은 것인지, 골프와 해외여행이 좋고 노래방과 찜질방이 좋다고 ‘한반도 긴장’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는 안일(安逸)주의가 과연 옳은 것인지, 6자회담 7년 동안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천안함 수병 46명을 죽였는데 그런 회담이 필요한 건지, 통일 독일은 20년 만에 유럽 최강국이 됐는데 통일비용이 무서워 통일을 회피하는 건 옳은 일인지… 한국전쟁을 이겨내고 산업화·민주화를 달성했던 조상의 혼령까지를 불러 추석 밥상에서 한번 토론해보자.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