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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천 총참모장이 중국을 방문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외교적 결례’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 장관에게 미국을 맹비난하는 장광설을 10여 분간 작심한 듯 쏟아냈다. “미국은 항상 패권주의에 해당하는 행동이나 표현을 하는 패권주의의 상징”이라는 말도 했다. 미국은 물론 한·미 동맹의 한 축인 한국까지 겨냥한 듯한 발언이다. ‘패권국가에 동조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처럼 들린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2001년 5월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다. 장쩌민(江澤民·강택민) 국가주석이 김중권 민주당 대표를 만났을 때다. 그때 장 주석도 한국의 집권당 대표를 상대로 10여 분간 일본 정치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1989년 국가주석 취임 뒤 10명의 일본 총리를 만났다. 석 달도 안 돼 물러난 총리도 2명이나 됐다. 그런 사람들과 어떻게 중요한 약속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취지였다.
장 주석의 발언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건 그 뒤 중국이 과시한 ‘대일 압박외교’ 때문이다. 일본의 자본·기술·시장을 필요로 했던 ‘인내(忍耐)의 대국’이 더 이상 아니었다. 외교적 다툼과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고삐를 더 바싹 죄었다. 2005년 중국 전역을 뒤흔든 반일 시위도 최대한 활용했다. 지난해 9월 센카쿠 열도(중국은 댜오위다오) 영토분쟁은 중·일 외교전쟁의 결정판이었다. 중국은 양국 고위급 회담 중단과 일본 관광 취소, 희토류 금속 수출 중단 등 강경책을 쏟아냈다. 아연실색한 일본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한·중 수교 19년, 마침내 올 게 온 것인가. 중국은 한·미 동맹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한국에 오는 중국의 관료·지식인들은 용산 전쟁기념관을 거의 필수 코스처럼 참관한다. 6·25에 참전한 자신들의 역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50대 초반의 저명한 학자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용산 미군기지가 참 인상적”이라며 “중국에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도 한복판에 미군기지를 허용하는 한국은 미국의 속국이 아니냐는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일부 중국 측 인사는 중·대만 관계나 티베트 독립 문제 등 민감한 쟁점을 꺼내면 “한·중 관계가 나빠지면 한국이 잃을 게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하는 지경이다.
중국 지도부는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2개의 원칙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나는 남북한 등거리외교, 하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약화다. 차기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습근평) 시대에 북·중 혈맹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지난해 10월 6·25에 대해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한 건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발언일 것이다. 압박과 회유의 양면책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 파워는 날로 커지는데 한국 정치권의 대응은 안이하다. 조급증과 국론 분열, 동북아 외교에 대한 무(無)전략, 감정적인 대응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본은 20여 년간 정치 리더십이 추락하면서 중국에 얕잡아 보였다. 한국 정치 지도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과 진보진영에선 북측보다 우리 정부를 향해 눈을 더 부라린다. 중국을 방문한 인사들은 그들의 내밀한 속내를 파악하기보다 사진 찍는 데 열중한다. 그러니 중국의 거물급 인사와 만나게 해 주겠다며 거액을 요구하는 매개자까지 나오는 것이다. 정치판의 갈지자 행보와 치고받는 정쟁 때문에 한국은 이제 중국이 배워야 할 발전모델에서 배워선 안 될 반면교사로 전락했다. 천 총참모장의 무례함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G2 시대’의 중국발 폭풍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중앙SUNDAY 편집국장 대리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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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국방장관(오른쪽)이 15일 오후 베이징 ‘8·1 청사’(국방부)에서 열린 한·중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가운데는 량광례 중국 국방부장. [베이징=연합뉴스]
중국군 총참모장 천빙더(陳炳德·진병덕·70) 상장(上將·대장 격)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장쑤(江蘇)성 난퉁(南通)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19세 때 육군 사병으로 입대해 2002년 상장까지 올라갔다. 당 중앙군사위원까지 겸해 군부 실세로 손꼽힌다.그런 천 총참모장이 중국을 방문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외교적 결례’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 장관에게 미국을 맹비난하는 장광설을 10여 분간 작심한 듯 쏟아냈다. “미국은 항상 패권주의에 해당하는 행동이나 표현을 하는 패권주의의 상징”이라는 말도 했다. 미국은 물론 한·미 동맹의 한 축인 한국까지 겨냥한 듯한 발언이다. ‘패권국가에 동조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처럼 들린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2001년 5월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다. 장쩌민(江澤民·강택민) 국가주석이 김중권 민주당 대표를 만났을 때다. 그때 장 주석도 한국의 집권당 대표를 상대로 10여 분간 일본 정치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1989년 국가주석 취임 뒤 10명의 일본 총리를 만났다. 석 달도 안 돼 물러난 총리도 2명이나 됐다. 그런 사람들과 어떻게 중요한 약속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취지였다.
장 주석의 발언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건 그 뒤 중국이 과시한 ‘대일 압박외교’ 때문이다. 일본의 자본·기술·시장을 필요로 했던 ‘인내(忍耐)의 대국’이 더 이상 아니었다. 외교적 다툼과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고삐를 더 바싹 죄었다. 2005년 중국 전역을 뒤흔든 반일 시위도 최대한 활용했다. 지난해 9월 센카쿠 열도(중국은 댜오위다오) 영토분쟁은 중·일 외교전쟁의 결정판이었다. 중국은 양국 고위급 회담 중단과 일본 관광 취소, 희토류 금속 수출 중단 등 강경책을 쏟아냈다. 아연실색한 일본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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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부는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2개의 원칙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나는 남북한 등거리외교, 하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약화다. 차기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습근평) 시대에 북·중 혈맹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지난해 10월 6·25에 대해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한 건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발언일 것이다. 압박과 회유의 양면책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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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파워는 날로 커지는데 한국 정치권의 대응은 안이하다. 조급증과 국론 분열, 동북아 외교에 대한 무(無)전략, 감정적인 대응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본은 20여 년간 정치 리더십이 추락하면서 중국에 얕잡아 보였다. 한국 정치 지도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과 진보진영에선 북측보다 우리 정부를 향해 눈을 더 부라린다. 중국을 방문한 인사들은 그들의 내밀한 속내를 파악하기보다 사진 찍는 데 열중한다. 그러니 중국의 거물급 인사와 만나게 해 주겠다며 거액을 요구하는 매개자까지 나오는 것이다. 정치판의 갈지자 행보와 치고받는 정쟁 때문에 한국은 이제 중국이 배워야 할 발전모델에서 배워선 안 될 반면교사로 전락했다. 천 총참모장의 무례함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G2 시대’의 중국발 폭풍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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