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강력한 금융제재가 포함된 대북 독자제재를 전격 시행함에 따라 북한에 미칠 영향이 주목됩니다.
북한 김정은은 스위스 은행 계좌를 통해 비자금이나 각종 사업자금을 은닉하거나 거래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만큼 타격이 적잖을 거란 분석입니다.
최재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스위스 정부가 스위스 내 모든 북한 관련 자산을 동결하고 금융서비스를 금지하는 독자 제재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의 대북 제재 대부분이 포함된 강력한 조치입니다.
특히 주목되는 게 금융제재입니다.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에 은닉된 김정은의 비자금은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는 게 대체적인 예상입니다.
2005년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대한 제재 이후 북한이 자금을 유럽으로 분산했다는 판단에 따른 겁니다.
스위스가 대북 금융제재 조치에 들어가면서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집권층은 비자금 대부분을 회수할 방법이 막힐 것으로 보입니다.
이 비자금이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나 체제 유지에 활용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만큼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더욱이 유럽연합도 북한 제재 대상에 단체 1곳과 개인 18명을 추가해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설 곳은 더욱 좁아지게 됐습니다.
정부 당국자는 스위스가 북한 정부와 노동당 자산을 포괄적으로 동결한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동안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의 관련성을 증명해야만 제재 대상의 자산을 동결할 수 있었던 만큼 제대로 된 제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김정은이 유학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스위스가 대북 사치품 수출도 전면금지한 것도 북한에 적잖은 충격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YTN 최재민입니다.
유별난 '스위스製 사랑' 김정은에 엄청난 압박
입력 : 2016.05.20 03:00 | 수정 : 2016.05.20 08:08
[스위스 대북 강력제재 영향은]
유·사춘기 10년을 보낸 나라… 김정은 평소 '스위스 따라하기'
사치품 선물정치도 큰 타격, 비자금계좌까지 폐쇄할지 주목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한 스위스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제2의 고향' 같은 나라다. 1984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1990대 초반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에서 조기 유학을 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모두 스위스에서 보낸 것이다. 그동안 스위스는 국제 사회의 대북 압박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외교 소식통은 19일 "이번 제재로 김정은 일가의 비자금이 묶이고 사치품 수입에 제동이 걸린다면 김정은 정권은 스위스에 대단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생활을 지켜본 학생과 교사들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은 스키를 자주 타러 다니고 영화·농구에 빠지는 등 자본주의 문화를 맘껏 누렸다. 이런 영향 탓인지 김정은의 정책 중에는 스위스와 연관된 것이 많다는 분석이다. 집권 첫해(2012년) 3억달러(약 3567억원)를 들여 강원도 원산 부근에 스위스 스키장을 본뜬 마식령 스키장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같은 해 강원도 세포 지역에 '조선의 알프스'를 만들겠다며 대규모 풀밭과 목장도 조성했다. 당시 김정은은 "스위스처럼 온 나라를 잔디밭으로 덮으라" "스위스의 물놀이장을 그대로 만들라" 등의 지시를 내렸다.
외교가에선 스위스가 김정은 일가의 비자금에도 손을 댈지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이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해외 비자금은 40억~50억달러로 파악된다. 이 중 상당액이 스위스에 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노동당 국제부장 겸 정무국 국제담당 부위원장(옛 국제비서)에 기용된 리수용 전 외무상이 30년간 스위스 대사를 지내며 맡았던 주요 임무도 김정일 일가의 비자금 관리였다. 리수용은 2014년 외무상에 오른 뒤에도 해외 출장을 마치고 평양에 돌아가는 길에 자주 스위스를 들러 1주일쯤 머물곤 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2000년 중반 이후 계좌 동결 등에 대비해 스위스에 있던 비자금을 중국·러시아·싱가포르·스위스·룩셈부르크·리히텐슈타인 등 전 세계 수십 개국에 분산했다"면서도 "스위스가 북한 계좌 동결에 본격 나선다면 김정은 비자금도 묶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북한은 2005년 마카오 한 은행의 김정일 통치자금이 동결됐을 때 "피가 마른다"는 표현을 썼다.
김정은은 사치품도 스위스제를 고집한다. 2010년 10월 노동당 창건 65주년 행사에선 스위스 파텍 필립 제품으로 추정되는 손목시계를 찼다. 소식통은 "주문 생산만 가능한 제품으로 가격은 1억원 정도"라고 했다. 2012년 8월엔 부인 리설주와 나란히 스위스 명품 브랜드인 모바도 커플 시계를 찬 모습도 포착됐다. 같은 해 북한에는 김정은 자녀용으로 추정되는 유럽산 고급 출산·육아용품 15만유로(약 2억원)어치가 반입됐다. 이 중엔 스위스 메델라사(社)의 심포니 유축기(모유 짜는 기계)도 있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이 제품은 300만원이 넘는다. 마식령 스키장 조성을 전후해서는 스위스제 수제(手製) 스키 등 김정은 일가용으로 추정되는 유럽산 스키용품들도 대량 수입됐다. 김정은은 또 유학 시절 즐겨 먹던 스위스 에멘탈 치즈를 북한에서 만들려다 실패하자 수입해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가 본격적으로 대북 사치품 수출 금지에 나서면 김정은의 사치스런 생활뿐 아니라 측근 관리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김정은이 당·정·군 고위 간부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뿌리는 선물 중에는 스위스제가 많기 때문이다. 고위 탈북자 A씨는 "김정은은 고사포 처형 같은 공포 정치와 '선물 정치'를 배합해 측근들을 다스려왔다"며 "스위스제 사치품 수입이 끊기면 김정은의 '선물 정치'도 적지않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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