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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곳에 갔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가?(1)
일본 국제교류 서울 문화센터 점거 미수사건 전말
 
김기백 기사입력 :  2009/04/04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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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곳에 갔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가?(1)
-일본 국제교류  서울 문화센터 점거 미수사건 전말-
 
 
반드시  범이라도 한마리  때려잡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근 20년가까이나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절치부심하면서,  벼르고 별러온 일이 참으로 통분하게도,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에 용두사미[龍 頭蛇尾]격으로, 우스운 모 양새 밖에 안되는 하나의 헤프닝이 되버리고 말았지만, 이글은 이 혼돈의 시대에 같은 하늘아래서 숨쉬고 살아가고 있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보고서이자 또하나의 메세지이다.  
 
 
-점거라는 용어만 없었을뿐 , 1월1일자 신년메세지에서 사실상 공개적으로 예고한일!-
 
 
그결과와 경위에 대해서는 이미 2번에 걸쳐 민족신문에 공개한바 있으므로, 오늘의 이글에서는 지난  3월26일 현장내부에서 있었던 일과 결국 왜 실패하게 되었는지 , 애초에는 왜 안국동<행정주소지는 운니동이지만 편의상 안국동으로 표기> 소재 일본문화원을 목표장소로 삼았는지 등에 대해 될수록 일목요연하게 정리 하고자  한다.
 
1910년 8월29일 경복궁 근정전에 내걸린 일장기


 
주한 일본 문화원 점거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대 초반부터이고,   김대중 정권하에서 김종필이 총리를 할 당시에도 한번 구체적으로 진행되다가 실행직전에 좌절 된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현장에까지 접근한것은 아니었다 >계획이 근래에 본격적으로 착수되기 시작한것은 작년 여름부터 였고, 그때도  현장 투입조 몇명을 모을수 있을듯 하다가 결국 무산되는 바람에 해를 넘기게 되었지만,  지난해 초가을 (9월말경)부터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사람을 모으기 시작하여, 년말경에는 필자까지 포함 가까스로 6명을 모으는데 성공, 기왕이면 새해 벽두를 기해 거사를 하는것이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것으로 판단되어,  마침내 지난 1월 15일낮 <그당시 일본문화원에서는 1주일가량 일본식의 인형극 행사를 하고 있었고, 그날이 행사 둘째날 이었다>그나마 애초 6명중 2명이 이탈하는 바람에 4명이 각오를 단단히 하고 현장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공개한데로 배신자에 의한 밀고로 인해 현장이 원천 봉쇄 되는 바람에 통분하게도 좌절되어 버렸고 , 그 후유증 때문에<일본문화원 점거계획을 망친 왜놈첩자, 윤승길놈에게 자살을 공개명령함!지난 3월26일의 거사도 결국 실패하게 되었지만, 올해초에는 반드시 뭔가 비상한 일을 하고야 말것이라는 각오는 이미 1월1일자 신면메세지에서<기축년 새해를 흐트러진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원년으로 삼을것! >공개적으로 예고를 했던것이다.
 
 
-안국동 일본문화원보다 훨씬 어렵고 불리했던 광화문 신문로 일본국제 문화센터!-
 
안국전철역 4번출구 입구바로 앞에 있는 일본문화원은 장소가 비교적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건물도 아담하다 할만큼 작은 반면, <안국동 일본문화원은 수삼년 전부터 여러번 들락거려 왔다> 광화문 신문로 흥국생명 3층에 있는 <일본 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편의상 일본문화센터>의 존재는 필자도 1월15일 이후에야 인터넷 검색을통해  알게 되었을만큼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안국전철역 4번출구에 소재한 일본문화원


 
평소 누구라도 출입하는데 거의 제한이 없기로는 두곳이 비슷하지만, 일본문화원은 형식적이나마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야 하는데, 일본문화센터는 그런절차도 없이 완전히 개방되어있는 곳이지만, 3층 전체가  일본문화센터이고 (4층은 영국 문화원)외부인이 자유로이 출입할수 있는 시설로서 건물 정면 바깥쪽으로 창문이 나와 있는곳은, 그곳에서 가장 넓고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는 실평수 40평정도 되보이는 문화정보실 이라는곳 밖에 없고, 그외 수시로 개방되는 강의실 3군데와  바로 옆에 작은 강사대기실이 하나 있지만  창문이 전부 건물 뒤쪽으로 나 있는데다가,  소수의 인원으로 그중 하나를 점거한다해도, 넓은 로비와 복도는 물론 바로 옆방으로 얼마든지 진압병력을 투입할수 있는데다가, 방과방사이의 벽이 그리 단단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고 판단한것이다.
 
-밀고자만 아니었으면 이미 1월15일에 거뜬히 성공했을일!-
 
그에비해 애초 목표장소였던 안국동 일본문화원은 건물 규모부터가 작은데다가 1.2.3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3층에는 소극장이 하나 있는외에도 <140석 정도되는 소극장은 사방이 외부로 통하는 창문도 없고 , 붙박이 관람용의자 외에 바리게이트를 칠만한 집기도 없는등 소수로는 점거가 사실상 불가능>  창문이 대로변과 통하는 10평정도 안팎의 별로 크지도 않고 출입이 자유로운 방이 몇개 있고 , 그 중 가장 깊숙이 위치한 방하나를 일단 점거하는것은 소수의 비무장 인원으로도 별로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고, 게다가 그방으로 통하는 복도의 폭이 장정둘이서는 나란히 걸을수 없을 정도로  좁기때문에, 일단 점거해서 그방에 있는 각종 집기로 바리게이트를 치면서, 문고리를 봉해버리고 단단히 묶어버리면 <행동개시 초기 2-3분이 관건>최소한 1시간 정도는 버틸수 있다고 판단한것이다.
 
게다가 일본문화원은 엄연히 치외법권지대 인데다가 , 한.일 양측 당국이 정확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는데만 최소한 30분이상은 걸릴테니,  외부에서 대기하는 기자와 안팎으로 합세 ,내부에서도 핸드폰카메라로 찍어 전송하는 방식이면 애초의 6명이면 넉넉하고 ,비록 3-4명이라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확신한것이다.
 
일단 그렇게만 되면, 4차선정도에 불과한  그쪽 도로일대는 경찰과 기자. 시민들로 순식간에 마비가 되버릴것이고 , 그렇게되면  경찰병력이 제아무리 많이 출동해도 다른곳도 아닌 일본문화원 점거자들, 그것도 비무장의 50대내외의 사람 몇명을 향해 수많은 보도진과시민들이 지켜보는가운데 무리한 폭력진압을 함부로 할수 없게 될것이며, 결과적으로 최소한 몇시간은 아주 당당하면서도 평화적으로 점거하면서 우리의 주장과 요구를 내외신에 널리 알리는 성과를 충분히 달성 할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무너지면 당연히 중국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도 ,왜놈들 따귀 한번 갈겨버리지 못하는  한국의 명색 보수우파놈들은,  모조리 팔.다리도 없는 병신들인가?-
 
어디그뿐이랴! 원래의 계획은 주모자이자 현장지휘책임자인 내가 바깥을 향해 점거를 풀기위한 현장 협상 조건으로 준비해간 성명서와는 별도로 
 

첫째: 주한 일본대사가 현장에 와서 직접눈으로 보고  본국정부에 보고 할것!

둘째: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를 현장에 불러와서 일본식의 극우집단과 한국의 정통보수우파의 어디가 얼마나 다른지를 직접 보도록 할것!

>셋째:경찰청장이 현장에 직접와서 협상에 응할것!

세가지를 점거 해제 조건으로 내걸기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포크레인까지 동원, ys 영감 큰 사위집을 수십명이 때려부순것도 한국놈들이고, 무려 15년이상 걸려 고작 6명모인것도 한국놈들이고,  밀고까지 해버린놈도 분명히 한국놈이라는 기막힌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못해  치가떨릴만큼 피가 역류하는것은, 정말 필사적으로 한창 사람을 모으고 계획을 짜고 있던 어느날 <그때도 워낙 큰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는 바람에 그냥 지나가는 식으로  묻히고 말았다> 어떤 미친놈들이 작당을 해서 김영삼정권시절 ys영감이 어딘가에 숨겨놨을것이 틀림없는(?) 막대한 비자금을 찾는답시고 < 영문도 모르고 일당 몇십만원씩 준다는 꼬임에 빠져 따라나선 젊은애들 말고도 나이깨나 든 주모자가 최소 몇명은 있었을것> 무려 수십명의 인원에다가 포크레인까지 동원해서 경기도 어디에 있는 김영삼영감 큰사위 집으로 쳐들어가,그야말로  졸지에 담장을 짓뭉개버리고 마당까지 파헤치면서 무슨 유엔산하기관(?)에서 합법적으로 집행(?)하는 일이라고 큰소리까지 쳤다는,  용감무쌍,무지막지하기가 수호지에 나오는 노지심 못잖은 괴한들이 등장해서  실로 웃지못할 기괴망칙한 일대소동을 벌였다는 기사를 보았다는 것이다.
 
 -사이비 뉴라이트류들 말고도 , 이땅에 정통 보수우파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걸 입증하기 위해!-
 
원래는 글이 좀 길어지더라도 오늘 한번에 다 쓰고 말 생각이었지만 , 쓰다보니 하도 기가 막히고 또다시 울분이 치밀어 오르다 못해 피가 거꾸로 솟구칠 지경이라 , 오늘은 일단 이정도로 대충 마무리 하고자 하거니와< 그와중에  참 신기하도록 고맙고 놀라운 사실은 ,나보다 몇살이나 나이 더 많아  이미 육십이 넘어(48년생)  허연 수염을 휘날리며 실질적 사법정화를 위해 동분서주해온 어우경씨가 적극 동참 했다는 것이지만, 어우경씨는  고작 사람 대여섯명 모으는데 무려 15년이상 걸렸다는 내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다가, 이제는 반쯤은 믿는것 같다> 그나마 지난1월15일당일 날까지 나를 믿고  동참했던 3명<그들도 최하 40대중반이었고 평소에는 서로 안면조차 없었던 사람들임에도, 나를 믿고 그날 현장에까지 갔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그래도  할 도리를 다한 용기있는 한국사람들이다> 조차 이런저런 말못할 사정과 우여곡절끝에 결국 다 흩어져 버린상태에서 하도 치가 떨리고분해서 거의 기적적으로 다시 서둘러 모은사람 숫자가 필자를 포함 5명이었으나,막상  3월26일 당일에는 그 중에 2명이 또다시 불참, 결국  다 늙은 중늙은이 2명과 50대초반 하나가 그래도 그냥 주저앉아버릴수는  없어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자원자를 모을수도 없고,이 개떡같은 천민자본주의 풍토에서 앞으로 10년 아니 100년을 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기를 쓴다 해도, 사람을 더 모을수 있으리라는 아무런 기약도 보장도 없고>무모한줄 알면서도 치외법권지역은 아니지만 일본 외무성산하 기관임이 분명한, 일본 문화센터시설 가운데 가장  넓으면서 대로변 정면으로 아주 크게 창문이 나있는 <문화정보실>을 일단 점거만 하면, 4층이 영국문화원이기도 해서 그 파급효과가 안국동 못지않게 클수 있다는 판단에서, 무리하게 결행하다가  결국 중과부적으로 미수에 그치고 말았던것이다.
 
*3월26일 현장에서의 일은 하루 이틀뒤쯤에 따로 쓰기로 한다.
 
인터넷 민족신문 발행인: 김 기백


http://www.minjokcorea.co.kr/



# 아래는 현장에서 소지하고 있다가 일본문화센터 관계자와 경찰에 제출한 성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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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日本 國際交流 서울文化센터를 점거했는가?




己丑年 새해를 흐트러진 民族正氣를 回復하는 元年으로 삼고자 함!

        

             - 6者會談에서 日本 排除. 逐出 !




         -1965年 韓日 基本條約 全面改正 !




         -新 韓.日漁業協定 破棄 !




         -對馬島도 韓國 領土 !




         -韓國統一 日本介入 絶對禁止!




         -약탈 文化財 全面 返還 !




         -韓.日間 100년史 總 決算. 日王 謝罪!



          檀紀: 4342<西紀 2009>年3월 26 일

          인터넷 민족 신문 發行人 겸 主筆 : 金 淇 白

          일류국가추진운동본부 본부장: 魚 羽 慶

          외 참가자 일동 <구체적 성명서 별도>




   *당초의 거사계획은 지난 1월15일 종로구 운니동소재<안국 전철역 4번출구   운현궁 바로 옆>주한 日本文化院을 점거키로 결의하고, 당일 오후 1시경에 현 장에 도착하였으나, 밀고자에 의해 정보가 누출되어 일본문화원건물 셔터가 내  려지고, 건물 안팎곳곳에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펴는 바람에 1차 거사는 실패, 부득이 거사 계획을 수정, 우여곡절 끝에 장소를 변경하여 安重根 義士 殉國99 주년인 오늘에야, 광화문 신문로1가 소재 흥국 생명빌딩 3층에 위치한<4층은 영국문화원> 일본국제 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소장-혼다 오사무-本田修>를 잠시 점거하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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