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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2.1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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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적-양심적-이성적 민족주의는 글로벌 시대와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太古적부터 있어온 자연발생적 人之常情 일뿐, 결코 定型化되어 있지 않다!
 
발행인 신년 메세지 기사입력 :  2010/01/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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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북한판 마샬 플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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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박정희-김일성을 뛰어넘어야 민족이 산다

 
내친김에 얼마전에 우선 총평만 해놓은 "민족은 허상이다"라는 최종덕상지대 교수의 서평과 관련,그러한 시각의 어디가 얼마나 잘못된것인지에 대해보다 구체적으로 분석 논평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교수류의 지식인들의  이른바 민족주의에 대한 논리적 학문적 접근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구중심의 이론체계에 입각한것이다 보니 그 출발부터가 잘못되어 있을수 밖에 없는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이론의 뼈대자체가 이미 애초부터 공허하기짝이 없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편향적 구조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명백한 모순과 한계점을 지니고 있는것이다.
 

 
최교수는 우선 현대 과학적 근거를 대면서 ①: 혈통 민족주의가 실은 허상으로 가득찬 일종의 조작된 신화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고,  <극히 예외적인 몇몇 극소수 종족말고는>이미 오래전부터 완전한 순혈 단일민족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고 인정해온 이글의 필자 또한 최교수의 그러한 지적에 원칙적으로 동의 하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다.
 
그럼에도 분명한것은, 최교수가 말하는 '혈통적 민족주의' 까마득한 고대로부터 인류사회전체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이자 매우 자연발생적이며 가장 오래된 하나의 이데올르기로 작동해온것이 엄연한 史實이며 한국과일본등의 몇나라는 다른민족들에 비해 아직도 비교적 단일민족인것 또한 엄연한 사실인것이다.
 

특히 한반도 민족주의와 관련,가장 직접적이고 단적인  예를 들자면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사회에서 서구적 이론체계에 흠뻑 젖어있는 이른바 학자-지식인들은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입만 열었다 하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구한말무렵부터 일제강점기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태동되었다"느니 심지어는 "그 이전에는 숫제 민족이라는 개념이나 관념자체가 아예 없었다"느니 하는 망발을 태연자약하게 늘어놓는 것을 무슨 대단한 학문적 성과인양 내세우기 일쑤지만 史實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러한식의 망발이야 말로, 모든것을 서구중심적 관점에서 규정해버리는 부류들에 의해   얼마나 말도 안될만큼  조작된 엉터리-어거지 학설인지를 극명하게 입증할 史料는 얼마든지 있거니와 누구도 감히 부인할수 없는 가장 대표적이고 뚜렷한 기록 한두가지만으로도 극명하게 입증될수 있는것이다.
 
 
무슨소리인가? 가장 대표적인 史實은 지금으로 부터 무려 1천3백여년전 신라가 나-당연합군을 구축하여 고작 대동강이남을 통일한 직후,당시 대동강 이북의 광대한 고구려 영토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당나라가 내친김에 고구려 영토 전체는 물론, 여차하면 신라까지 무력으로 병합해버리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이 신라와 힘을 합쳐 당나라에 대항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그때부터 이미 <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 까마득한 고대로부터> 최교수가 지적하는 혈통적 민족주의와 문화적 민족주의 내지 겨레의식- 동족의식이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누구도 감히 부인할수 없는 역사적 史實인것이다.

 
아래 최교수의 글에서도 보듯이 무슨 '우생학'이니 '생물학'까지 들먹이면서 미주알 고주알 역사적 유래와 과학적 근거를 파고들며 민족주의를 난도질 하기에 혈안이되다 못해 이골이난  먹물들이 하도 많아서 굳이 덧 붙이자면 생물학적으로도 혈통의식은 꼭히 인간에게만 있는것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들도 <같은 개科 동물이지만 가령 늑대와개와 하이에나떼들이  우연히 조우하여 싸운다고 가정해볼때에도 개는 개편으로 가담하고 늑대는 늑대편으로 하에에나는 하에에나 편으로 가담하기 마련이고 심지어 식물들도 같은 종끼리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것은 대체 무슨까닭이겠는가!>지니고 있는 하나의 원초적 본능이라할만큼 대단히 자연스러운 현상인것이다.

 
② 문화 민족주의 : 최교수는 이른바 문화적 민족주의에 대해 하필이면 미국을 대표적 사례로 들면서 "미국식의 문화적 민족주의를 '열린민족주의'부르기도 한다면서 '우생학'까지 들먹이고 있지만 우리민족이 지향해야할 ' 진정한 열린민족주의'가 결코 미국식의 문화적 민족주의 일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최교수의 일방적 개념규정에   결코 동의 할수 없기는 마찬가지 인것이다.

 
③ 이념 민족주의 :최교수가 세번째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이른바 '이념 민족주의 '야 말로 현실적으로 남.남갈등은 물론, 장차 압록강이남 한반도 전체를 실로 전대미문의 엄청난 혼란과 분열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게될 가장 치명적 요인으로 작용할것이라는 점에서 최교수의 분석과 심각한 우려에 대해 일정수준 동의하지만, 그러한 치졸하고도 저열한 이념민족주의 역시 그냥 묵살-외면-부정해버리거나 없어져야 할 현상이라고 규정해버린다고 해서 결코 간단히 없어지거나 어느시점부터 저절로 극복되어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제대로된 올바른 민족주의란 과연 어떤것인지에 대해 가닥을 잡아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 역시 최교수식의 일방적 개념규정만으로는 해결책이 될수 없다.


④ 방어 민족주의 :---->마지막으로 방어적 민족주의 개념이 있다. 새로운 체제의 경제 제국주의라고 부를 정도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약소국가가 살아남는 방식은 국가 구성원의 일체적 단결력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방어 민족주의의 특징이다. 민족공동체 내부의 정신적 이념을 강화함으로써 외부 강대국의 침략에 방어하는 방법론으로 민족 개념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이렇게 민족이라는 말의 실상은 그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 민족의 정체성도 정해진 것이 없으며, 민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발상도 타당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실체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 전제에서 볼 때 실용적인 가치조차도 없을 정도다.  운운...하면서  최교수가 마지막 항목으로 설정해 놓고 난도질을 하고 있는이른바  방어 민족주의에 대한 최교수류의 인식과 개념규정이야 말로,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만큼 본말과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치졸유치 하고도 공허하고도 무책임하기짝이 없는 순진한(?)착각이자 망상이며, 오늘날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 최교수류들이 실은 얼마나 무지 몽매한 부류들인지를 그들 스스로가 극명하게 입증해주고 있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궤변이자 요설에 불과한 엉터리 이론으로서 민족전체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자 대단히 심각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自害的 발상인 것이다.
 
 
-민족주의라는 간판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지만 않을뿐,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까지도 강렬한  패권주의적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한순간도 망각하거나 간과해서는 안된다는것!-



왜인가? 백보 천보를 양보해서 가장 약체인 한국사회만이 유독 순진하게도 최교수류들이 지적하고 있는 4가지 민족주의를 깡그리 포기 해버리고 알량한 '탈민족주의'를 지향할것이라고 선언 하고 실천에 옮긴다고 해서 , 한반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그야말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특히 일본과중국이 한국사회의 그러한 '탈민족주의 노선'에 감동혹은 감화되어서 그들의 침략적 패권주의 노선을 깨긋이 포기하게 될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글의 필자가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명확히 강조해두고자 하는것은 요컨대 紳士的-良心的-理性的 민족주의는 글로벌 시대와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신사적-양심적-이성적 민족주의자는 얼마든지 세계시민으로서의 자격또한 충분하다는것!그리고 이른바
민족주의란 太古적부터 있어온 자연발생적 人之常情 일뿐, 결코 定型化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것을 뺏거나 침범해서는 안되지만 내것은 확고히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4343(서기 2009)년 1월1일 낮
 
인터넷 민족신문 발행인: 김기백
 
http://www.minjokc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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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허상이다"라는 최종덕 상지대 교수의 서평에 대하여...





[철학자의 서재] <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 교과서>프레시안
김기백칼럼
편집자주:필요에 따라 언제나 그래왔지만 민족신문 발행인이 오늘 특별히  "민족은 허상이다"라는 프레시안의 기사를 전문그대로 일방적으로 옮겨온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어서이다. 한국사회의 학계중에서도 특히 서양사를 전공했거나 서구에서 유학한 이른바 진보좌파성향의 지식인들의 '민족주의'에 대한 시각과그에따른 매우 부정적인 평가는 오늘 프레시안에서 톱기사로 올려져있는 최종덕교수의 관점과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으며, 민족주의에 대한 그들의  관점과 평가가 기본적으로 대단히 부정적이라는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것 또한 널리알려져 있는바 대로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민족주의'가 도무지 발을붙일수 없는 그 못지않게 큰이유는 그렇다고해서,이른바 보수우파성향의 학자나 지식인들이 '민족주의'에 대하여 긍정적이거나 호의적인가하면 ,그들 또한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있는것이다.
 
 
 
문제가 진실로 복잡하고 심각한것은 그렇다고 해서,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적인 기류나 정서혹은 기풍이 없느냐 하면, 그또한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있는것이다.
 
 
게다가 ,임진강 이남의 한국사회에서는 이른바  '민족주의'가 이래저래 천덕구러기로 전락한지 오래인반면 ,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해온 임진강이북의 소위'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는 아무런 의구심이나 최소한의 논란의 여지조차 원천차단된 가운데 사상유례없는  족벌세습독재체를 무한정 합리화하기위한  가장 편리한 도구이자 그럴듯한 장식품으로서의 '민족주의'가 문자그대로 무제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한국사회에서의 이른바 '민족주의'는 아래기사에서 최교수가 지적하고 있듯이 때로는 '황우석파동'에서 때로는 '광우병 파동'에서 또 때로는 '북핵문제나 서해교전'에서 또 때로는 '월드컵경기나 한류열풍"에서 그리고 한.일양국의 과거사문제와깊이 관련된 최근의 '친일인명사전 파동'이나'독도문제나 역사교과서 왜곡파동' 같은 문제들이 이슈화될때마다 여러가지 형태로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것이 분명한 실체적 현실적 명제임에도 어느누구도 선뜻 자신이 '민족주의자'라고 나서기를 대단히 꺼려하고 있는 풍토이다보니 뜨거운 감자로 인식되어 온지 이미 오래인 그놈의 '민족주의'를 글로벌시대와  굳이 크게 충돌하거나 역행하지 않고도 한반도의 실정에 맞는 <합리적.합목적적이고  올바른 민족주의>로 가꾸어나가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예 전무한 상태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 기약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인것이야 말로  머지않아 반드시 도래하고말,  그리하여 압록강이남 전체 남북한 국민-인민들 모두가  단 몇명의 예외조차없이 겪게될것이 명약관화한  사상 유례없는 크고도 심대한  혼란과비극을 잉태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것이, 민신발행인이  일관되게 주창해온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21세기 국제정치정세에 대한 통찰력이자 확고부동한 역사의식이다.
 
아래기사에서 볼수있는 최종덕교수의 관점과 시각의 어디가 얼마나 잘못 진단되고 있으며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것인지, 그리고 상식적 민족주의자조차도 과연 세계시민으로서의 도덕적 자격이 없는것이며, 합리적민족주의와이른바 글로벌시대의 세계시민은 과연 끝내 공존-양립할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주변상황이 좀 정리되는대로 될수록 빠른시일내에,여태까지의 필자의 글과는 좀 더 다른 관점과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논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이정도로 총평에 그치고자 한다.
 
2009년 11월 14일밤 : 민족신문 김기백

 
 
 
 
"민족은 허상이다"
 
[철학자의 서재] <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 교과서>
기사입력 2009-11-14 오후 4:26:44
 
역사 교과서는 왜 중요한가
몇 해 전 체세포 배아복제 환상을 주었던 황우석 사태는 한국인에게 희망과 좌절의 극단을 오가게끔 한 희대의 오도된 사건이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연구 윤리의 경각심과 그에 따른 재정비 사업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을 정도로 이 사태는 전 세계 사람들까지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체세포 배아복제 논란이 한창이던 당시 비판자 그룹에게 던졌던 황 박사 주변 사람들의 공격적 논리는 간단했다. '국제적인 특허를 통해 막대한 이익이 창출되는 애국적인 행위인데, 왜 발목잡느냐'라는 논리로 일관했다. 이런 류의 사이비 애국심 논리는 민족이라는 집단의식을 방패막이로 하고 있다. '한민족 최초의 위대한 발견'이라는 식으로 매체가 한 개인을 영웅으로 받쳐준 역할이 한 술 더 떴다. 개인을 집단으로 위장하거나 개인을 민족으로 대체함으로써 개인의 욕망구조를 전체에 투영시키는 방식이다. 특히 개인의 물질적 혹은 정치적 권력이 확장될수록 그들의 집단 대체 의지는 더 커진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아주 특이한 점이 따라온다. 황우석 사태를 아직도 옹호하는 사람들은 민족의 고통을 주었던 제국주의 흔적을 청산하고자 하는 사회적 흐름에 대하여 강한 반발을 하는 집단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역설적인 현주소로 여겨진다. 사소한 예를 들어 보자. 인터넷 댓글 경향을 보건데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강한 반발을 하는 사람들이 황우석 사태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기묘하게 겹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가? 나는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권력 집단의 지배 논리로 악용되어진 오류의 문화에 기인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민족의식도 따지고 보면 권력 집단을 옹호하는 논리에 자신도 모르게 편승한 집단 심리의 한 현상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인은 우리와 우리 후손을 위하여 우리의 근현대 역사를 바르게 공부하는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그 통로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역사 교과서이다. 독일은 전쟁의 책임을 지면서 실질적인 전범처리 등의 과거사 반성과 성찰을 했지만 일본은 그와 유사한 실질적인 노력이 없었다. 이러한 불행한 역사의 사실도 역사 교과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지금의 청소년과 후대들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일본의 태도는 일본 역사의 부분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라 현재 한반도 역사의 왜곡과 저해를 가져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우리 스스로 일제의 흔적을 청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흔적의 여파를 향유하고 있는 집단이 많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일본의 태도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하여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비교하는 일은 중요하다. 프랑스와 독일은 19세기 초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생긴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150년여 동안 무려 4번의 전쟁을 치룬 소위 역사적 앙숙이었다. 이러한 과거사를 갖는 유럽의 양국을 보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조명하는 일은 아주 의미있다.
 


▲ <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 교과서>(페터 가이스 외 지음, 김승렬 외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 프레시안
두 국가 간의 제대로 된 화해를 하기 위하여 과거 역사에 대한 사실적 인식이 공유되어야 한다. 그러한 인식의 공유를 실천하기 위하여 독일과 프랑스는 양국 간 우호를 다짐하는 엘리제 조약을 1963년에 맺었고, 이 조약 40주 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 교과서>(페터 가이스 외 지음, 김승렬 외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를 같이 만들었다.
이 교과서는 단순히 유럽 어느 개별 국가의 역사 교과서라는 의미로 국한되지 않는다. 동북아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하여 우리에게도 필요한 그런 의미를 갖는다. 마침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2008년도에 출간했다.

이 책의 번역은 단순한 번역이라는 작업을 넘어서 있다. 그리고 단순한 학교 교과서의 의미도 넘어서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일제의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는가라는 반성을 일게 했다. 이 책을 보면서 왜 우리는 겉으로는 일제 수탈의 역사를 성토하면서 속으로는 일제의 식민지 과거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를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독일과 프랑스의 현대사 지식을 습득하려는 것보다 우리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조언과 시사를 받았다. 우리가 말하는 민족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민족에 대하여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을 아래처럼 정리하는 계기를 주었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아니지만 말이다.
 
민족은 어디에 있는가
민족과 애국심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실상은 일제 식민지의 역사를 감추기에만 급급하다는 점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제 민족이라는 개념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민족이 과연 어디에 있었는지 냉정하게 되물어야 한다. 그 질문을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① 혈통 민족주의 : 그중 첫째는 혈통적 민족주의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한반도의 순수하고 고유한 혈통적 민족 구성이 허상이라는 것은 이미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중국의 한족이나 일본의 왜 민족, 그리고 우리 한반도 민족 모두 고유한 혈통이 아니라는 것은 유전전 계통 검사 결과를 통해 혹은 고고사적 증거 등을 통해 이미 논란의 여지없이 확인된 사실이다.

② 문화 민족주의 : 둘째 혈통 민족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흔히들 문화적 민족주의를 제시하곤 하는데, 이는 민족의 개념을 권력으로 도용하려는 숨겨진 의도가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당연히 다민족 국가이지만 동시에 가장 민족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나라이다. 학생들 교실에 국기가 걸려있는 나라는 아마도 미국과 북한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과 같은 소위 문화적 민족주의를 '열린 민족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열린 민족주의는 혈통과 무관한 개념이지만, 왜 그런 민족의 범주를 굳이 도입해야 하는가라는 비판적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쉽게 말해서 열린 민족주의 역시 민족 개념을 통해 혈통이라는 우생학적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가려는 무의식적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③ 이념 민족주의 : 셋째 소위 '이념 민족주의'의 문제가 우리에게 심각히 당면해 있다. 이 책 <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 교과서>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일본과의 과거사에 매달려 현재를 구속하는 것은 적실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 나도 동의한다. 최근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을 신경질적으로 부정하는 불특정 집단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은 민족의 차이를 과거 일제에 두기보다는 북한에 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왜 '친북인명사전'은 만들지 않는가라는 엉뚱한 비난들을 <친일인명사전> 발간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퍼부어 댄다.

이는 새로운 방식의 민족주의이다. 혈통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고 소위 이념적 대립의 대상으로서 가상의 민족적 경계선을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나는 이런 가상 민족주의를 '이념 민족주의'라고 부른 것이다. 이념 민족주의는 혈통적 우생학 이상으로 상대이념 진영에 대한 배타적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명한다. 화해보다는 차별을 강조하며 혈통적 우생학보다 더 강한 우생학적 차별주의를 거침없이 행사한다. 그 차별의 수준은 거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이르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④ 방어 민족주의 : 마지막으로 방어적 민족주의 개념이 있다. 새로운 체제의 경제 제국주의라고 부를 정도로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약소국가가 살아남는 방식은 국가 구성원의 일체적 단결력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방어 민족주의의 특징이다. 민족공동체 내부의 정신적 이념을 강화함으로써 외부 강대국의 침략에 방어하는 방법론으로 민족 개념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민족이라는 말의 실상은 그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 민족의 정체성도 정해진 것이 없으며, 민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발상도 타당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실체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 전제에서 볼 때 실용적인 가치조차도 없을 정도다. 쉽게 말해서 민족의 실체를 포기하는 데서부터 경제적 위기를 타파할 수 있으며, 남북 대립을 화해로 가져올 수 있으며, 진정한 과학기술 입국이 될 수도 있다.

민족이라는 실체 없는 사이비 실체를 잡고 늘어지는 이유는 현재 속에서 자기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왔듯이 1969년 사민당 출신으로 독일 연방총리가 된 빌리 브란트(1913~1992)는 나치의 희생국이었던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때가 1970년도였다.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한 국가의 정치적 대표자가 과거를 용서받고자 한 그런 모습은 민족의 우상들을 폭로한 역사적인 전환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꿇은 무릎은 나치의 우생학, 민족 고유성, 이주 노동자, 여성 및 장애인 차별성, 권력을 옹호하는 가짜 애국심 등등을 과감히 내동댕이치고 새로운 삶의 체제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였다. 이러한 브란트 수상의 모습은 과거 독일 패전 이후 전범 재판을 이웃국가들의 요청대로 수용한 결과와 깊게 연관한다.
 
▲ 1970년 나치의 희생국이었던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1913~1992).     © 프레시안


탈민족적 과거사 청산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너무 미진하다. 법적으로 일제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재판이 국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적도 없으며 따라서 일본 역시 브란트 수상 같은 진정한 반성의 행동을 보이질 않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제 청산을 요구하는 주장은 민족주의적인 주장이 아니라 탈민족주의라는 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민족의 허구에서 벗어나야 오히려 과거사 정리가 가능하며 나아가 일본과의 진정한 화해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앞서 이념 민족주의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탈민족적 태도는 남북한 화해와 통일에 결정적인 키워드로 될 것이다.

탈민족적 반성을 보여준 독일의 태도를 프랑스는 전폭적으로 수용하면서 프랑스와 독일의 모든 분야의 관계가 급속히 친밀해졌다. 이러한 양국 간 관계의 전환은 주변국가와의 지정학적 화해가 우선이라는 판단에 기인한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지정학적 관계가 한국과 일본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몇몇 단점의 하나는 독일이 반성한 것처럼 일본도 반성을 했을 것이라는 역사적 오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지적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문제는 그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청소년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양국이 함께 노력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한 공동의 노력은 글로벌 시대에서 세계를 향해 나가야 할 청소년들에게 민족의 허구를 깨고 크고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는 듯하다. 또한 이 책은 화해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역사의 오류를 수정하는 한편의 사과와 반성이 우선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혈통 민족이 허구라는 점을 인정할 때 비로소 서양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혹은 이주 외국인에 대한 인권 차별 등이 없어질 수 있다. 문화의 속성을 잘 이해해야만 문화 민족주의가 자칫 정치 및 경제 권력자의 독재를 보증해주는 아류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을 전혀 다른 우생학적 별종이라고 보는 이념 민족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남북한 문제 해결의 조짐이 보일 것 같다.

이미 한국은 세계 경제 10위라는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이런 규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이유는 한국은 방어적 민족주의라는 이미지에서 여전히 벗어나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양자 간 국제 협상에서도 비굴하지 않게 밀리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의 중요한 특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나에게 꼽으라 한다면, 이 책은 그들의 국내 역사 교과서이면서 동시에 세계 역사 교과서라는 점이다. 유럽의 강세는 국내사와 국제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데 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역사를 보는 시선을 넓힌다면 더욱 좋겠다. 우리만의 역사가 아닌 주변국과의 상관적 역사를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자신감을 청소년에게 넘겨줘야 하지 않겠나.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최종덕 상지대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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