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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4.19당시 발포를 명령한적이 없다.
려증동 교수귀하, 역사를 함부로 왜곡하지 마세요! /김기백
 
려증동 기사입력 :  2009/02/2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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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증동 교수귀하, 역사를 함부로 왜곡하지 마세요! 

[려증동의 배달겨레 광복 ]
폐주 리승만을 건지려고 하면 하늘이 그냥 두지 아니한다


1960년 4월 19일, 동국대학교 학생대표 법학교 3학년 김칠봉이 동대 운동장에서 동국대는 경무대로 가자고 외쳤다. 국회의사당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그제사 주제를 알게 되어, 우리 모두 동국대를 따르자로 되었다. 우리들 대학생이 아니고서는 살인정치자 폭군 리승만을 물러나게 할 힘이 어느 곳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심정으로 일어선 공분의거(公憤義擧)였다. 서울시 10개 대학에 고등학교학생, 중학교학생이 따르게 된 거룩한 학생의거였다. 리승만은 자기가 있는 곳 경무대 안에 경찰서를 두었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리승만이 폭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승만은 책가방을 들고 외치면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했다. 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는 리승만이 시키는대로 발포명령을 내렸다. 총에 맞은 순국렬사가 모두 185위로 되었다. 다친 사람 수효가 많다. 리승만은 버티다가 4월 29일 6시 40분 아무 말도 없이 아내를 데리고, 리화장을 떠나 김포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 섬으로 달아났다.

폐주 무덤에는 돌을 갖다 놓지 말라고 했다. 폐주 무덤에는 절을 하지 말라고 했다. 폐주 리승만을 건지려고 하면, 간특소인배 민족반역자로 되어 공분의거인에게 두들겨 맞게 된다.

려증동ː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날짜: 2007년 02월 22일
작성자 : 려증동

※ '열린칼럼'의 글은 본 사이트 논조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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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마세요!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귀하께서 역사적 史實을 명백하고도 지나치게 왜곡하고 있어, 몇가지를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4.19당시 경찰이 발포한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결코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었으며, 당시 불법,부정선거로 부통령으로 당선된 이기붕과 내무장관 최인규와 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등의 과잉충성분자들이 발포 명령을 내림으로서 사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것입니다.


1960년 4월26일 하야성명 발표직후 경무대에서 이화장으로 물러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김기백: 그들 간신배들은 평소부터도 그랬지만 당시 이미85세의 老齡의 대통령 이었던 이승만 박사주변에 철저히 人의 장막을 치고 老대통령에게 상황의 진실을 은폐하기 일쑤였으며 , 4.19발발 당시의 대통령 속이기는그들의 최후발악이었다는걸 익히 아실만한 분이 왜 사실을 왜곡하나요??그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수많은 학생들이 죽고 다친사실을 까맣게 모르다가 뒤늦게 알게된 순간 대경실색,하야를 결심하게 되었고...

김기백: 4월26일 공식하야 성명발표 몇일전에(날짜를 정확히 기억못지만 이기붕일가 집단자살 직후였을것) 당시 부상학생들이 입원해있던 병원(당시는 계엄상태라 아마 국군수도 통합병원이었을것임)을 직접방문, 손자.증손자같은 학생들을 오히려 격려,위로하고.."불의를 보고 분노할줄 아는 애국청년들이 있는한, 이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하면서"국민이 원한다면 내가 물러나야 한다"고 언명하게 된것입니다.

김기백 :또하나, 귀하는 당시의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경무대안에 경찰서를 둔것 하나만 봐도 그가 폭군이었다는것을 알게된다는 따위의 참으로 몰상식한 지적을 하고 있는바, 세계어느나라의 국가원수 관저에 무장병력을 배치하지 않고 있는 사례가 동서고금에 단 한군데라도 있었나요??

오히려 그당시의 경무대 경찰서 정도는 그이후 청와대 안팍에 어마어마한 군병력을 배치하고 현역육군중장을 민간인 경호실장 아래의 경호차장으로 배속시킨 박정희 정권에 비하면 아주 순진하고 원시적 규모였다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김기백: 따라서, 별로 길지도 않지만 위의 귀하의 글은 거의 전부가 명백한 역사적 사실(객관적 펙트)자체를 크게 왜곡하고 있으며...특히===>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는 리승만이 시키는대로 발포명령을 내렸다.라는 대목과===>리승만은 버티다가 4월 29일 6시 40분 아무 말도 없이 아내를 데리고, 리화장을 떠나 김포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 섬으로 달아났다.는 대목은 고의적이라고 볼수밖에 없을만큼 명백하고도 악의적으로 역사적 사실(객관적 펙트)자체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을 해두고자 합니다.


김기백: 당시 이승만박사는 4월26일에 공식적으로 하야성명을 발표한직후,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길때도(살림살이래야 오랜망명 시절부터 애용해온 낡은 타자기와 서적과 의복을 비롯한 잡동사니들이었고 경무대에서 이화장으로 옮기고난 직후부터, 따라온 경호경찰들이 끼니를 잇기 어려울만큼 곤궁한 처지였다는 증언을 본적이 있음) "나는 이제 대통령이 아니니, 관용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겠다"고 고집하는것을 주변에서 "그래도 걸어가실수는 없다"고 강권하여 차를 타고 가는 도중 경무대에서 이화장에 이르는 연도는 물론, 건물 지붕과울타리 곳곳에까지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바로 며칠전까지 이승만타도를 외치던 학생들까지 "할아버지 만세!" "여생을 평안히 보내시기를..."등등의


하야 직후 이화장 담장 너머로 시민과학생들에게 인사하는 이승만 박사.

김기백: 구호를 적은 수많은 현수막을 내걸고, 수많은 시민. 부녀자들과 노년층들은 老대통령의 하야길을 눈물로 배웅했다는 것은 적어도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다 기억하고 있고, 당시의 기록영상으로도 명백히 입증되고 있음에도 귀하는 대체 무슨 까닭으로 "버티다가 아무 말도없이 하와이로 달아났다"고 왜곡하나요??

김기백 :게다가 한술더뜨서,실로 어줍잖게도===>폐주 무덤에는 돌을 갖다 놓지 말라고 했다. 폐주 무덤에는 절을 하지 말라고 했다. 폐주 리승만을 건지려고 하면, 간특소인배 민족반역자로 되어 공분의거인에게 두들겨 맞게 된다.는 따위의, 참으로 失笑를 금치못할만큼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무슨 공갈(?) 협박(?) 비슷한 언사를 늘어놓고 있는지 참 어이가 없네요...


덧글: 위의 댓글들은 당초 누가 보더라도 수일전에 폴리뉴스 칼럼방에 올려놓은<북한판 과거사 바로 잡기, 몇년이나 걸릴까> 라는 제목의 필자(김기백)의 칼럼 내용중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옹호한 대목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긴, 필자와는 피차 생면부지인 려증동(필자는 예컨대,여운형이라고 하지 려운형이라고 표기 하지 않지만, 당사자의 표기 방식을 존중하는 뜻에서 려로 표기한다)교수라는 분이 필자를 겨냥한것이 분명한, 짧은 칼럼을 수일전에 보고, 당초에는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묵살해버리려 했으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식의 명백한 한국현대사 왜곡을 마냥 방치하는것은 숫자가 많든 적든,현대사를 잘모르는 특히 젊은층들에게 해악을 끼칠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에서 려교수의 글밑에 댓글 형식으로 달았던 필자의 반박논리를 복사하면서 다소 보충하여 정식 반박칼럼으로 활용키로 한바, 혹여라도 려교수측이 이같은 필자의 반박에 대해 추호라도 이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공명정대한 토론과 논쟁을 벌여나가는것은 물론, 대체 누가 "간특한 소인배"인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해보일 용의가 있다는것을 공언해두는 바이다!



날짜: 2007년 02월 24일
작성자 : 김기백
※ '열린칼럼'의 글은 본 사이트 논조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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