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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곳에 갔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가(2)
戰時도 아니면서 한국만큼 용감한 국민이 많은 나라가 전세계에 어디 있나?
 
김기백 기사입력 :  2009/04/0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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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곳에 갔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가(2).
-戰時도 아니면서 한국만큼 용감한 국민이 많은 나라가 전세계에 어디 있나?-
 
일본국제교류 서울문화센터 점거 미수사건 전말에 대한 대충의 요지와 관련글은  이미 수일전에 비교적 상세하게 쓴바 있기때문에, 또 써봤자 결국 푸념밖에 안될것 같아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스스로 한번은 더 쓰겠노라 공언도 했고, 글을 읽는이들에게 하나의 참고자료도 될듯하여, 그날(3월26일) 광화문 신문로 소재 흥국생명 3층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전편에서도 말했지만, 결국 실패의 요인은 점거를 시도한 사람의 인원자체가 워낙 소수인 3명에 불과<5명이었으나 당일날 2명이 그나마 불참>했다는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던데다가 , 그것도 그 장소의 가장 넓은 방< 문화정보실>을 점거하려고 욕심을 내었던것도 무모한 시도 였지만, 설상 가상으로 사람들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뜻밖의 변수가  생겨났던 것이다.
 
그 <문화정보실>이라는 곳은 출입은 자유롭지만 면적이 상당히 넓은 방으로 방안에 안내데스크가 따로 설치되어있어 여직원 2명과 때로 남자직원1명정도가 항상 앉아있는 곳이고 좌우 양쪽 곳곳에 컴퓨터와 책꽂이 탁자등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그날도 무심코 앉아 있거나 들락거리는 남녀노소 일반시민들을 포함하면 10명가량의 사람들이 있는가운데 우리 3명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오후 3시경에 들어가 따로 떨어져서 주변상황을 체크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지품이래야 한발 정도되는 쇠줄 2개와 구호가 적힌 현수막 그리고 태극기 몇장과 성명서 유인물  정도밖에 없었다.
 
안에서 찬찬히 다시 살펴보니 왼쪽 옆에 직원전용 출입문이 따로 있는데다가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서 책도 보고 컴퓨터도 보고  있는 가운데, 두어명 정도는 나가기도 하고 새로 들어오기도 하는등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넓은 방을 ,그것도 직원 2-3명과 일반시민을 일시에 내보내고, 순식간에 완전히 장악하기에는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또 포기하고 맥없이 그냥 나가버릴수는 더욱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해서, 어우경씨와 내가 강행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실행한 첫번째 작업이, 군데 군데 앉아 있거나 책꽂이 쪽에 서있는  일반시민 몇명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좀 크게 쓴 쪽지와 귓속말로 " 우리가 곧 이곳을 점거할것이다.여기 있으면 위험하니 조용히 나가달라" 고 설득했더니 젊은 남녀 몇명은 놀라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알아듣고  밖으로 내보내는데 성공하였으나, 어우경씨가 내게 다가오더니 70대로 보이는 영감 둘은 무슨말인지 빨리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파악도 잘  안되는 가운데 " 알바도  없고, 나가지도 않겠다"면서   버티고 앉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애초부터 준비도 안한 무슨 흉기를 들이댈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한 돌발 상황이었던데다가 그런식으로 시간을 끌다보니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직원(물론 한국사람들)들이 뭔가 이상한 분위기라는 낌새를 채고 움직이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그순간부터 내가 어쩔수없이, 여직원들을 향해  위압적으로 " 니들 전부나가! 지금부터 우리가 여기를 점거한다!" 고 크게 소리를 치며 밖으로 내보내려 했으나, 그 젊은 여직원들이 흠칫 놀라면서 당황해하기는 했으나,  예상밖으로  " 왜그러세요?어디서 왔어요?"라며 전혀 겁을 먹지않고 대드는 자세를 취하자 <그때도 일반 시민 두어명이 남아있었다> 곧 여기저기서 다른남녀 직원 5-6명 <2명정도는 일본인>이 더 나타나서 우리 3명이랑 치고 받지는 않았으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꼴이 되버린것이다.
 
그직전에 나랑 또 한사람이 옆으로 통하는 직원 전용출입문은 황급히 일단 쇠줄로 엮어 안으로 걸어잠그기는 했으나, 투명한 유리로 된 훨씬 넓은 전면 출입문을 쇠줄로 걸어잠그는데는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막말로 칼이라도 한자루 갖고 들어가서 들어가자 말자 문부터 걸어잠궜으면, 분위기는 대단히 험악했어도 상황이 크게 달랐을테지만 , 애초부터 우리의 거사가 대내외적으로 최대한 떳떳한 명분을 갖기위해서는 , 확고부동한 기본방침과 첫째의 행동강령이 비록 실패할망정, 어떤경우에도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도>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기때문에 ,점거자체가 더 어려울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당초의 계획대로 1월15일에 안국동쪽의 일본문화원 점거를 실행할수 있었다면 <밀고자만 없었다면> 건물구조나 주변 입지조건과 여건상 ,10평내외의 깊숙하고 조용한 방하나를 장악하기는 훨씬 쉬웠고, 따라서 성공했을 확률이 대단히 높았던 것이다.
 
-나는 현장에서 체포된것이 아니다-
 
그런 몸싸움을 몇분간 하는 가운데  점거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더 이상 몸싸움은 피차 추태밖에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내가 '실패'를 인정하게 되었고, 내가 "실패를 선언"함으로서 더 이상의 몸싸움은 중단되었고,  우리 일행 3명은 퇴각하게 된것이다.
 
내가 실패를 자인하고 퇴각 하기전, 그러니까 그곳 남자직원들과 한창 몸싸움을 하고 있을때 여직원들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지만, 우리 일행이 건물밖으로 나갈때까지 경찰이 미처 현장에  <나중에 알고보니 빌딩 경비 직원 이었던 건장한 청년 두어명이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 우리를 배웅까지 해주었다> 출동한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실패를 인정하고 그곳을 나올때 우리랑 몸싸움을 벌였던 <일본국제교류 서울문화센터> 직원중에서 좀 나이 들어보이는  한국인 직원에게 " 우리는 결코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경찰에서든 누구든 언제든지 연락하라" 면서 소지하고 있던 유인물과 명함몇장을 주고 나왔던 것이다.
 
 
그러고나서 밖으로 나와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5분쯤 갔을무렵 내 핸드폰으로 낯선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이라 해서 택시에서 내려 잠시 의논한 결과 <무슨 촛불시위대 녀석들처럼 어디로 피해 숨어버리는 행동따위는 애초부터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우선 나혼자서 현장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도로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갔더니 인근 지구대에서 경찰이 몇명 나와있어 경위 파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자리에서 나는 <일본국제교류 문화센터> 관리 직원 한명과함께 지구대로 갔다가 종로경찰서로 정식 이첩되었던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절치부심 해온일을 사건을 사건답게 만들지 못하고, 우스운꼴의 헤프닝으로 만들어버린것은 결국, 나의 부덕의 소치이자  내가 워낙 人福이 없는 탓이기도 하려니와 , 그와 별개로 분명히 말하고 싶은것은 ,그날 직분상 나를 비롯한 우리 일행과 잠시나마  심한 몸싸움을 벌이고 , <업무방해 혐의>로처벌을 원한다고 진술했던<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 문화센터:정식명칭>의 한국인 직원들은 물론 일본인 관계자와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게 추호의 유감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그들은 다만 맡은바 직분에 충실했을뿐이며< 나는 오히려 나이어린 한국인 여직원들까지 포함한 그들의 투철한 직분수행의식을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그들과 우리는 피차 개인적으로 추호의 유감이 있을리 없으며 , 비록 처한바 직분은 달라도 적어도 그런일에 관한한, 특히 한국인들끼리는 <일반인들보다는 오히려 더>얼마든지 인간적 교감이 가능할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방면에 발이 넓지 못해서 사람 구하기가 그토록 어려운게 결코 아니다-
 
잘모르는 사람들은 <심지어 어우경씨조차도> 내가 무려 15년이상이나 그정도 이벤트한번 하려고 <그렇다! 진짜로 목숨을 내놓았던 우리의 수많은 선열들의 항일투쟁에 비하면 이정도, 그정도는 정말이지 잠시의 이벤트에 불과한것이다!>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고작 3-4명 5-6명밖에 구하지 못하고, 그나마 심지어 밀고자까지 끼어있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 하지만, 내가 결코 그방면에 발이 넓지 못하거나, 방법을 몰라서 사람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운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가령 내가 평소에 상당한 자금력이 있어 그럴듯한 정통우파 단체를 상시적으로 갖추고 있었다면, 문제가 상당히 달라졌을수는 있겠으나, 그런경우에도 이런정도의 국민의식수준과 풍토에서는 심지굳고 투철한 사람 몇명 구 하기가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행동파만이 애국자인것은 결코 아니지만-
 
간단히 말해서 웬만한 反日단체는 이미 내가 최소한의 연고내지 인연이 있거나, 얼마든지 접촉이 가능할뿐 아니라 ,옛날에는 심지어 북파 공작원관련단체. 작년무렵에는 촛불시위자 관련 단체는 물론, 덩치가 나보다 두배는 족히되는 해병특수색대 출신 녀석에다가  무술단체도 모자라, 비교적 젊은 정치지망생 녀석들뿐만 아니라 ,조폭 비스무리한 작자들까지 망라한  별의별 군상들과 평소 술만좀 먹으면 이를데 없이 용감무쌍한 개인들을 지난 10여년간 거의 해마다 수없이 접촉해왔고, 그중에 몇몇은 끈질기고 집요하게 설득도 해봤지만, 할듯 말듯 했던 단체나 개인들은 더러 있었지만, 최종순간까지 실행에 옮긴 단체는 단 한곳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히 나같은 행동파<결코 겸손이 아니라 실은 별것도 아니거니와> 만이 애국자이며, 다른 反日단체나 관계자들은 비애국자인것은  결코 아니고, <상당히 오래된 독도 관련단체나 독립유공자 유족회 같은 곳 말고도, 예컨대 반크나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같은 곳은 존재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유의미하고, 훌륭한 반일단체이다>시대적 조류 또한 이미 80년대나 90년대식의 <점거투쟁 방식>과는 달라졌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정도,이정도 이벤트에 사람 몇명 구하기가 이토록 어려운것은 한국사회전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10년이나 투신했는데도 단 한명의 동지도, 단 한발짝도 발전못한 인터넷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번참에 또 하나 실토하자면, 무려 10년이나< 정말이지 그냥 어영부영식의 10년이 아니라 문자그대로 혼신을 다해 전력투구해온 10년이었다> 실로 초인적이라 할만큼 전력투구 해왔음에도, 단 한명의 미더운 동지는 물론 아직도 한발짝도 발전하지 못하고, 지금 이시각까지도  참으로 신물이 난지 오래인 이짓을 밑도끝도 없이 반복해야 하는 이 개떡같은 신세를 벗어나서 나도 오프에서 활동 좀 제대로 해보는 명쾌한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목적도 있었던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럴줄 알았으면 애초 인터넷에 뛰어들지 않았을것이지만. 무슨 노름꾼 마냥  들인공과 세월이 아까워 설마 설마하다가, 이제는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게 되버린지도 이미 꽤 오래이거니와 ,지금 이놈의 민족신문인지 뭔지가 1기때보다도 훨씬 못하고, 지금보다는그래도  잘나갔던(?) 1기 민족신문도 실은 그 이전의 초창기 개인홈피때보다도 독자수나 조회수가 훨씬 못했으니, 신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전이나 후나 논조와 방향은  일관되게 똑같은게 분명한데,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민족신문이 특색이 없는게 결코 아니다!>  내재주로는 도저히 알아낼수도 풀수도 없는 불가사의 한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정도 이벤트 한번으로 무슨 천지개벽을 불러올것은 물론 아니지만, 일단 성공만 했으면 제대로 한번 본때를 보이고 난후부터 , 이런저런 후속조치를 얼마든지 창출해낼수 있는 원대한 계책과비전 심모원려 (深謀遠慮 )가 어찌 없겠는가?!






- 전시도 아니면서 한국만큼 용감무쌍한 국민이 많은 나라가 전세계에 어디있나?- 





이제 많든 적든,이글을 읽는 모든한국인들은 가슴에 손을얹고 생각해보고 대답해보라!


무슨 外敵이 쳐들어온것도 아닌 평시에, 대한민국처럼 용감무쌍한 국민이 많은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또 있는가?
 
폭탄이나 다름없는 가스통을 꽁무니에 매달고, 그것도 맨얼굴 맨머리로 거리가 좁거나 말거나, 복잡하든 말든, 종횡무진으로 돌진하는 오토바이가 한국처럼 많은 나라가 어디있고, 무슨 총알택시에 폭주 화물차는 또 얼마나 많으며, 10대 20대도 아닌 어른들한테, 음주운전 좀 하지말라고 그렇게도 말리고 단속해도 , 저도죽고 애매한 남까지 죽이는 움주운전이 도무지 줄어들기는 커녕, 나날이 늘어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첫째 아니면 어느나라가 첫째이며, 무슨 불만좀 있다고 술쳐먹고 차까지 몰고 파출소 들이받기를 예사로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말고 어디메에 있으며, 문자그대로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지며 각종 시위투쟁을 하는 국민은 또 얼마나 많으며,심지어 개인적 불만을 화풀이 한답시고, 국보 1호를 불질러버리는 국민이 대한민국 말고 지구상 어디에 또 있는가?
 

어디 그뿐이랴! 나이 칠십이나 먹은 뱃사공놈이, 잠시의 욕정을 이기지 못해 자식보다 어린 손주뻘밖에 안되는 생떼같은 젊은 남녀를, 한번도 아니고 두번에 걸쳐 수명이나 죽여놓고도 국가를 상대로 태연자약하게 "사형제도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내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에 있으며, 사소한 말다툼, 이해관계로 무수한 폭행. 고소, 고발에, 사기사건 무고사건이  이웃나라 일본의 무려 수십배 이상이 되는 나라가 개떡같은 대한민국 말고 어디에 또 있는가?

-이대로 가면 길어야 10년안팎에 북은 중국 손아귀에 남은 일본 손아귀에 떨어지고말것!-

더 말해 무엇하리! 

 
늘 해오던 말이지만 다시한번 단언하거니와 , 임진강 이남에서는 제아무리 반도체를 잘 만들고 스포츠를 잘 하고 한류가 전아시아를 뒤덮고 , 임진강 이북에서는 미사일이든 로켓이든 제아무리 수백,수천발을 쏘아 제끼며 허풍을 떨어봤댔자 ,특히 임진강 남쪽의 백성-시민-민중-국민들의 의식수준과 국민정신이 이토록 혼미하고 모래알처럼 분열되고 썩어문드러져서는, 이대로 가면 길어야 10년안팎에, 북쪽은 중국의 손아귀에 남쪽은 일본의 손아귀에 또다시 장악당하고마는, 참담한 남북한 동반몰락 형편없는 약체화되버리는 백년전의 그때보다 오히려 더 치욕스러운 수모를 당하고야 말것이 명약관화하다는 것이다.  

단기 4342 (서기 2009)년 4월9일밤 자정무렵
인터넷 민족신문 발행인: 김 기백
 
http://www.minjokc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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