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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반역이다??
'탈민족주의' 담론에 나타난 서구중심주의
 
인간메트로놈 기사입력 :  2008/04/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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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민족주의' 담론에 나타난 서구중심주의/인간메트로놈

입력시간 : 2003. 11.13. 00:00

*본 글은 서의식 교수의 "포스트모던 시대 한국사 인식과 교육의 방향"<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2002,푸른역사)과 임현진 교수의 "사회과학에서의 근대성 논의"<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비판>(1996,역사비평사), 그리고 그 외의 기타 문헌들을 참고하여 필자가 재구성 한것임을 밝힙니다. 일일이 각주를 달지 못한 점, 양해구합니다.

1.들어가는 말


최근 우리의 역사학계 일각에서 국사를 해체해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8월 21일 서울의 프레스센터에서는 ‘국사(國史)의 해체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공개토론회가 개체되었다. 이 자리에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는 “우리에게 국사는 억압이고 배제이며 은폐이다. 국사는 역사를 일국사라는 하나의 틀안에 가둬버림으로써 다양한 역사상을 매몰하고, 역사적 상상력의 결핍을 불러오게 된다.” 고 말했다. 다시말해, 민족국가를 역사발전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설정한 국사는 개개인이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겪은 고통과 희망을 ‘민족의 고난과 영광’이라는 서사로 가려버리고, 결국 민족주의를 매개로 동원논리를 정당화하는 ‘국가권력의 적대적 공범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인터넷조선,8.23일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이와 같은 논의가 가져올 일부 긍정적인 효과들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이들의 주장이 종래의 한국사 서술과 국사교육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등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의 한국사는 문헌고증학적 연구성과를 모아놓은 것일뿐, 제대로 된 ‘민족중심’의 역사 이해는 고사하고, 어떤 형태로든 역사이해 체계 자체가 성립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그 체계를 세우기 위한 노력마저 거의 포기한 실정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가 안고 있는 최대의 과제가 민족중심 역사 인식의 극복이라는, 따라서 기존의 국사는 모두 해체해야 된다는 이들의 지적은 공허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이와 같은 이들의 태도를 포스트모더니즘 역사관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고 본 글을 통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담겨있는 서구중심주의적 경향에 알아보고,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규정, 우리 역사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양의 지적 유행만을 좇으려는 일부 탈민족주의자들의 서구중심주의적 성향을 비판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만의 특수성과 세계사적 보편성을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족주의는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2.포스트모더니즘에 담긴 서구중심주의


서구는 14세기 이래 르네상스,종교개혁,지리상의 발견 등으로 봉건사회의 질곡을 뚫고 18세기 내지 19세기에 들어오면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에 의해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서양의 근대는 중세의 암흑기에 대비하여 개명된 시기인바, 근대적이란 표현은 흔히 반봉건적이고 진보적인 의미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기실 근대는 인간이 신의 섭리를 떠나 계몽과 해방의 주체로 등장하는 때이다. 이렇듯이 서부유럽이 16세기 이래 대략 200~300년간에 걸쳐 이룩한 일련의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면에서의 총체적인 변화를 근대화라고 지칭한다. 즉 유럽사에서 일회적으로 나타난 발전 경험을 보편주의의 기치 아래 포장한 것이 근대화이다. 하지만 서구는 양차세계대전에서 드러난 반인간적인 대량학살을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왔던 근대화로의 노력이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계사에서 1960년대는 이러한 근대의 모순이 다양하게 드러난 격변의 시기였다. 이 격변의 시기를 겪으면서 인류가 근대를 통해 추구해 온 모든 것들에 대한 반성과 자기비판이 일어났고, 이를 논리화한 결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가 확신해온 역사의 진보와 이성의 합리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나 민족을 실체도 모호한 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타파되어야 할 폭력으로 간주하며 국제적, 다인종적 연대를 강조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안에는 계몽주의의 정신이라 할 과학, 질서, 합리성, 진보가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본 글의 주제와 관련시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전형적인 서구중심주의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근대화가 서구중심, 정확히 말해 유럽중심적인 개념이듯이 탈근대화 역시 그것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근대성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의 시도는 어떻게 해석하자면 자신들은 이미 근대화 프로젝트를 완성했다는 전제 없이는 나오기 힘든 발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근대를 이룩한 것은 서구이니까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서구의 몫이라는 식이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은 제3세계의 신종속과 저발전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며, 그러므로 이것은 서구에 경우에 국한된 지극히 제한적인 서구중심적 사조라 하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서구중심적 사조라는 필자의 주장은 그들이 말하는 국제적,다인종적 연대가 결과적으로 ‘신경제’(신자유주의)의 대두에 한 몫을 담당했고, 이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강대국 위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더욱 공고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더라도 그렇다. 돌이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한 이유 역시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대한 저항에서였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본디 지향하던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변용에 새로이 이용되고 있으니 역설도 이같은 역설이 없을 것이다.


3.탈민족주의 담론에 나타난 서구중심주의


탈민족주의 담론을 외치는 연구자들에 의하면, 민족은 구체성이 없는 거대담론에 불과하며, 종래의 민족중심의 역사서술은 역사의 실상을 상당부분 왜곡하였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전 지구적 당면과제인 세계화와 국제화를 추진하는데 장애가 된다고 한다.또한 과거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정당화해주는 기제로서 민족주의가 악용되었음을 근거로 들며, 따라서 그에 입각한 역사교육은 이제 파기하고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실, 종래의 한국사 서술과 국사교육이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중심의 역사 이해에서 비롯한 문제점이라는 이들의 지적은 오해에 가깝다. 서두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아직 우리의 한국사는 문헌고증학적 연구성과를 모아 놓은 것일뿐, 제대로 된 민족중심의 역사 이해를 성취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몇 종의 <한국사>총서가 모두 그러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국사>교과서 역시 그러하다. 그 동안 <국사>교과서가 사실을 지루하게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받고, 시대구분이 체계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 받아온 이유가 바로 역사 이해의 일관성 부재에 있었다. 민족중심의 역사 이해는 고사하고 어떤 형태로든 일관된 역사이해 체계 자체가 아직 성립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박정희 정권 이래로 <국사>는 정치적으로 오용되고 악용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국사교과서를 축소하거나 국사 자체를 해체해야 된다는 주장은, 마치 손가락에 가시가 자꾸 박히고 또 그럴 우려가 있으니 그 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국사>의 정치적 악용은 국사의 본령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그것대로 악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하면 된다. 덧붙여, 박정희 정권이 내세웠던 ‘민족적 민주주의’를 민족주의로 분류하는 자체가 오류이며 그것은 ‘의사 민족주의’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는 식민지 민족주의로 성립하고 발전하였다. 외적으로는 침략세력에 대항하고 내적으로는 봉건세력과 투쟁해야 했으며 아울러 민족의 분열을 막아야 했던 많은 부담속에서 우리의 ‘민족주의’가 성장했다. 게다가 그 침략세력은 일본이라는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다. 이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도 특수성을, 일국사적 특수성 속에서도 보편성을 동시에 획득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다중의 과제를 안고 출발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최장집 교수의 말대로, 한국의 민족주의는 역사적 경험, 그것도 역사적 경험의 실패와 얽혀 있는 좌절된 집단적 정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 정서적이고 감상적이며 격정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듯 우리 역사학의 이론과 방법은 우리 자신의 정서와 삶의 궤적을 근거로 도출되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역사인식을 한국사의 이해에 그대로 원용하고 나아가 지금까지의 역사서술과 교육을 비판하는 준거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제 스스로의 가치관을 상실하고 남의 눈으로 본 나를 진정한 나로 착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나로서 존재하기 어려운 법이다. 문제는, 역사학의 세계사적 추세가 아니라, 어떤 역사인식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로서 생존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서구가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nationalism'개념을 준거로 그간 이루어진 한국사 이해형태를 재단하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민족의식은 주체로서의 역사성을 살피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로, 우리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한다는 인식이며, 그 개체로서의 존립을 가능하게 만드는 우리의 피부가 곧 민족이라는 의식이다. 이는 선택의 문제도, 좋고 싫음의 문제도 아니다. 역사성, 그것일 뿐이다. 따라서 제 정조를 제 가락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국수주의의 발로로 폄훼하려는 역사인식을, 표방 그대로 ‘민족주의사학’으로 파악하는 것은 부당하다.

결론적으로, 탈민족주의자들의 한국사 인식에 있어 주체성의 결여가 발견되고, 부정적 관점이 부각되는 이유는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 역사인식에서 기인된 바, 다시말해 남의 사론을 소개하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맥을 이어온 자기 고민에서 나온 논의가 아니므로 우리의 존재 혹은 삶에서 유리된 명제로 성립하고 말았다.


4.정리하는 말


포스트모더니즘은 본디 국가 계획과 통제에 반발하여 진행된 1960년대의 사회 변화를 배경으로 대두한 사조였다. 즉 1917년의 러시아 혁명으로 정점에 달했던 국가 계획의 구상과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 대공황의 타개책으로 제시된 케인즈의 국민경제에 대한 국가통제 이론이 구현됨으로써 전 세계가 국가중심의 사고를 강화해오던 터에 일어난 저항의 한 형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안목에서 본다면 국가와 민족중심의 역사 이해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반발이 오히려 ‘신경제’라는 강화된 자본주의 체제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확신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한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사회적 맥락이나 원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맥락을 판단할 준거를 거부하고 사상시킨 결과, 뜻하지 않은 역할을 본디의 지향에 반하여 수행하게 된 것이다. 국가나 민족의 장벽을 허문 것이 자본주의의 변용과 강화에 이용된 측면이 있다면, 적어도 현 상황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스스로 그 지향을 재검토해보아야 할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한다. 국가와 민족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족중심의 역사 이해가 한국사를 왜곡으로 이끌었다는 지적은 부당하다. 민족중심의 사관과 역사 서술은 우리가 완성하고 이루어내야 할 과제다. 그것은 민족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원리 위에서 체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민족의 독자성과 자존심을 지키는 동시에, 각 민족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사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이것이 제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 민족주의가 세를 얻고 역사 교육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질곡의 근대사에서 한국 사학이 추구해온 ‘근대성’ 또한 제 역사성을 벗어나 서구적 가치에 매몰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근대성’을 반성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가치관과 연구 방법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다시 새로운 ‘서구’에 의존해서 모색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가 이미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이에 기대어 ‘국사’를 부정하는 것은 길이 아닐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역사인식은, 가령 문헌고증사학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는데 유효할 것이다. 우리 역사의 체계화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사론을 검토할 수 있으나, 역사의 본질은 그러한 모색과 탐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싼 논의가 우리 자신의 고민, 즉 ‘한국사적 이슈’위에서 적극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노력들이야말로 서구를 모든 논의에 중심에 두려는, 학문적 종속성 또는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될것이다.





◆참고문헌

임지현,1999,「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임지현,2003,「오만과 편견」,휴머니스트
김기봉 외,2002,「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푸른역사
역사문제연구소,1996,「한국의 ‘근대’와 ‘근대성’비판」,역사비평사
김동춘,2001,「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삼인
최장집,1996,「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나남출판
머레이 북친,2002,「휴머니즘의 옹호」,민음사



comments
김기백 (2003.11.13-01:33:53) 아주 대단히 좋은글이네요!!! 직접쓰신글인가요??
대개 유학파들이 설쳐대고 있는 이른바 탈민족주의=국제주의자들의의식구조=담론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자가당착적 궤변이자 망발인지를 명쾌하게 논증하고 있네요...

이글을 민족신문 대문에 내걸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지요?^^


http://www.minjokc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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