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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질에 관한 몇 가지 역사적 사례 고찰
김두한, 김좌진 장군 아들인것 분명하다!
 
김기백 칼럼 기사입력 :  2008/05/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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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시인 李箱과 흥선 대원군. 그리고 김두한
 
 
요즘 굴지의 재벌기업인 한화그룹총수 김승연 회장이 저저른 이른바 보복폭행 사건으로 온나라가 떠들썩 한지도 벌써 여러날이 되었고, 그 사건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큰 뉴스거리가 되는것으로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사건으로 기록될것이 분명한 것 같다.
▲김승연 한화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남대문 경찰서에 도착한 장면    ©유장훈 기자
주먹질 내지 폭력행위는, 아마도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있어왔다고 해도 좋을만큼 오래된 본능적 관습(?)이자 범죄행위이지만 ,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본질적 한계성으로 인해, 국가나 집단 간의 무력충돌내지 전쟁행위와 함께, 앞으로도 결코 끊이지 않을, 영원한 숙제의 하나에 속하는 문제일것이다.
 
각설하고... 오늘은 필자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에서 누구나 알만한 유명 인물들중에서도 시대적 배경과 인물의 역할 및 성격이 전혀 달랐던 세 사람과 주먹질에 얽힌 에피소드 몇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 깡패랑 맞딱드린 이상 , 천재시인다운 기지를 발휘하다-
 
첫번째 사례로 소개하고 싶은 인물은 왜정 초기에 태어나 20대 후반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시인으로 유명했던 李箱( 필자는 문학이나 더구나 시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고, 이상의 詩세계는 더더욱 이해를 할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런 천재시인이 있었고 ,그가 '날개'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며, 새파랗게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이다.
 
무슨 얘긴고 하니, 원래 약골로 태어난 데다가 폐병까지 앓고 있었던 이상이 어느 날 술에 취해 어떤 골목에서 아주 불량한 깡패랑 딱 마주쳤는데, 그 깡패녀석이 시비를 걸면서 이상을 주먹으로 치려는게 아닌가?
 
▲ 시인 李箱(이상) :  편집부

 
그 찰나, 그야말로 다급해진 이상이 " 잠깐만!" 하니까 그 깡패녀석이 조건반사적으로 "뭐야?" 하는 표정으로 주춤하는 틈을 이용해 이상이 침착하게 그 깡패녀석에게 묻기를 " 당신과 내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소?" 라고 하니까, 그 깡패녀석이 참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답하기를 " 자식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니 놈은 내주먹 한방이면 골로가는 거지!" 라고 하는걸 이상이 냉큼 되받아서 말하기를 " 당신 말이 맞다는 걸 나도 인정하오! 그렇다면 이미 승부가 뻔한 싸움을 해서 뭐하겠소? 싸우지 맙시다" 라고 했더니, 그 불학무식한 깡패녀석이 생각해봐도 이상의 말이 맞는 게 분명한지라, 되레 멀쑥해져서 그냥 지나가 버렸고, 덕분에 이상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이 에피소드가 실렸던 책이 어떤 책이었는지 지금은 구체적으로 기억을 해낼수 없지만, 수 십년전에 아마도 어떤 문학잡지에서인가 읽은 기억이 분명하다.
 
-파락호 시절의 흥선군 뺨을 갈겨 버린자가 대원군에 의해 어영대장으로 출세하다-
 
이상보다 더 유명한 역사적 인물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그야말로 상갓집 개마냥 오만 잡놈들과 어울려 동가식 서가숙 하면서 한창 파락호 생활을 하고 다니던 당시 (그때는 물론 대원군이 아닌 그냥 흥선군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왕손이라는 위인이 주구장창 비루하기 짝이 없는 주정뱅이. 상갓집 개 노릇을 하고 다니는 꼴을 보다못한 어느 젊은 사람 하나가 어느날 색주가 근처에서 흥선군과 딱 마주치자 다짜고짜 " 명색이 왕손이라는 자가 어째 허구헌날 그 모양이냐"고 흥선군을 크게 꾸짖으면서 , 아직도 술이 덜깨서 작취미성 상태인 흥선군 이하응의 뺨을 보기 좋게 철썩 때려버리고 ,발길로 냅다 내질러 버린 것이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천덕꾸러기 왕손에 불과했던 흥선군으로서는 참 비참하게도 "아야!" 소리 한번 못하고 ,그야말로 개망신이라 할 그런 봉변, 수모를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파락호 왕손, 흥선군 이하응 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수삼년후, 흥선군 이하응의 열 두살짜리 둘째 아들 명복(개똥이)이, 철종의 뒤를 이어 졸지에(?)왕위에 오르게 되고, 그바람에 상갓집 개꼴에 불과했던 흥선군 이하응이 일약 섭정 대원군의 막강한 지위에 올라 운현궁에 범같이 좌정 하게 되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괴변이 생기자, 운현궁에는 섭정대원군을 한번이라도 뵈려는 무리들이 대문이 미어 터질지경으로 몰려들게 된 어느 날 , 기골이 장대한 젊은 선비하나가 기어코 섭정대원군을 꼭 뵙겠다고 소동을 피우는지라, 대원군이 "들이라"고 명하여 대면한 자리에서 그 선비가 대원군에게 "저하, 시생을 알아보시겠습니까?" 하니 대원군이 "자네가 대체 누군가?" 라고 하고 물으니 , 그 선비가 답하기를 " 시생이 바로 수 삼년전 모처에서 저하의 뺨을 때린 그 놈이 올시다"라고 하는게 아닌가!
 
▲   흥선대원군 이하응 :편집부

 
그자의 놀라운 이실직고를 들은 대원군이 즉시 호령하여 가로되 "너 이놈! 네놈이 지금도 감히 내 뺨을 칠수 있는가?" 라고 물으니, 그자가 답하여 말하기를 " 시생은 邸下께서 앞으로도  만약,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잘못된 정사를 펼치시면 하시라도 저하의 뺨을 때릴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들은 대원군이 짐짓 大怒하여 좌우에 명하여 가로되 " 발칙한놈이로다! 저놈을 끌어내라!"고 명하니 흥선군의 오랜 수족노릇을 하던 천.하.장.안이 그자를 방문밖 댓돌 아래로 끌어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대원군이 또다시 호령하여 가로되 " 여봐라! 어영대장 나가신다!!"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절대군주체제인 조선왕조 시대의 어영대장이란 지금의 청와대 경호실장에 해당하는 자리로서, 더구나 혁명적이라 할 만큼 엄청난 변혁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던 대원군 집정초기에는 엄청나게 막강한 자리였던 어영대장이라는 자리를, 거의 생면부지나 다름없었던, 게다가 자신의 뺨을 때리고 발길질을 했던 자에게 줄만큼 호쾌했던 인물이 바로 5백년 조선왕조의 마지막 불꽃이자 英傑이었던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었으며, 뒤늦게 나마 흥선군 이하응의 그릇을 알고, 감히 제 발로 찾아갈 줄 알았던 인물이 바로 흥선대원군 만이 해낼 수 있었던 서원철폐를 비롯한 집정초기의 혁명적 개혁정책을 집행하는 악역을 맡았던 ' 낙동대감 이경하' 였던 것이다.
 
-뭐라? 똥구멍에 장가를 들었다고?!-
 
말난김에 푹행 사건과는 전혀 무관 하지만, 흥선대원군과 얽힌 수많은 일화중에 하나만 더 소개하자면, 흥선대원군이 막 섭정의 자리에 올랐을 무렵, 참으로 별아별 잡것들이 다 대원군과 실낱같은 인연이라도 맺고 , 요즘말로 눈도장 한번이라도 찍고 싶어 운현궁 앞마당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시절 어느 날, 옛날 파락호 시절 한두번 본적이 있었던 아첨꾼 하나가 천신만고끝에 섭정 대원군에게 문안을 드리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어 딴에는 유식한 척 하느라고 인사랍시고  말이 " 시생, 이번에 黃門에 取妻하게 되었사옵니다" 라고 한 것이다.
 
그자의 말을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제가 이번에 황씨 집안에 장가를 들게 되었습니다" 라는 말인데, 그 말을 들은 흥선대원군이 답하여 가로되 " 뭐라? 똥구멍에 장가를 들었다고?!" 해버렸으니 그 아첨꾼이 제아무리 간교하고 강심장을 가진 자라 해도 꽁지가 빠지게 꺼져버리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간단히 말해서 흥선대원군은,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짐짓 가는귀가 어두운 척 하면서, 황씨 집안이라는 黃門과 똥구멍이라는 肛門의 발음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 쥐새끼 같은 소인배에 불과한 그 아첨꾼의 접근을 아예 원천봉쇄 해버리는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모르기는 해도, 흥선대원군이 만약 그런 자를 중용했더라면 아마 그자는 요즘 한국에서 '왕의 남자'로 수 년째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 옛날 중국의 조고를 연상시킬 만큼 참으로 요상한 유모 장관같은, 희대의 간신배로 급성장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위의 두가지 일화는 실로, 흥선대원군이 결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완고한 봉건사상에 찌든 단순한 쇄국주의자도 아니었으며, 사람을 볼 줄아는 知人之鑑과 기지에만 탁월했던 것이 아니라, 거의 동시대 인물이었던 김삿갓이나 정수동 못지 않은 대단히 서민적이고도 탁월한 익살꾼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것이다.
 
 
-적어도 김태촌. 조양은 따위의 돌깡패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천하 협객이었던 김두한-
 
 
마지막 사례로 들고 싶은 인물은 바로 적어도 주먹질(폭력)에 관한한, 위의 두사 람보다 훨씬 더 유명인물인 김두한에 대해 잠시 얘기 해보기로 한다.
 
필자는 서울에서 성장하지 않은 관계로 김두한씨를 직접 본적도 없고, 김두한은 위의 두 사람보다 훨씬 더 우리 시대와 가까운 인물인 데다가 , 수많은 영화 소설로 워낙 많이 알려진 인물인 탓으로 , 필자만이 알고 있는 희귀한 일화를 별도로 알고 있는것은 거의 없으나, 언젠가도 두어번 공개한적이 있지만, 우연찮은 인연으로 김두한씨의 따님인 탤랜트 김을동씨와 그 이복동생이자 김두환씨의 장남을 (필자보다 4살 연하이다)한 20년가량 전부터 알게되어, 그 집안의 내력을 일반인들보다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김두한시대 이후에는 이 땅에 제대로된 협객은 고사하고 의리와 낭만을 아는 건달이나 깡패는 아예 씨가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 인력거꾼에게도 짚이는대로 돈을 주었던 김좌진과 김두한 父子-
 
 
▲   백야 김좌진 장군:편집부

 
한가지, 필자가 분명히 증언할 수 있는 것은 김두한씨에 대해 악의적인 시각 내지 오해를 하고 있는 일부 인사들이 김두한이 김좌진장군의 아들이 아니라는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도올 김용옥도 그 중에 하나였다) 이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어 왔으나, 김두한씨가 김좌진 장군의 親子인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안동김씨 집안에서도 오래 전부터 인정해왔고, 해방직후의 가족사진을 비롯한 여러 자료 뿐 아니라, 필자가 알기로 김좌진 장군의 네번째 부인이었던 나 혜국 여사( 7-8년전 90여세의 고령으로 별세 하셨다)의 아들로서 김철한( 김두한의 이복동생인 셈이다)씨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김두한씨와 달리 몸이 불편해서 거의 사회활동을 하지 않은 탓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 용모가 김두한씨와 그야말로 붕어빵이라 할 만큼 판박이였다는 사실로도 입증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故김두한씨가 김좌진장군의 아들이 맞느니, 아니라느니 하는 논란이 생겨난것은  시대적으로도 민족전체가 암울한 시기였던데다가  워낙 불우한 성장과정을 거친 김두한씨가 주먹패로 성장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출생과 성장내력에 대해 상당히 신화적인 과장을 하면서 시쳇말로 뻥을 치는 바람에 자초한 측면이 있을수있는데다가, 해방직후 건국과정에서 좌파들을 때려잡는 선봉부대장 역할을 했기때문에 (일설에는 해방직후 북쪽의 김일성측에서 밀사를 남파, 인민군 소장제복을 보내어 김두한을 포섭하려 했고 거의 성사 될뻔했으나,  백범김구 선생으로 부터 김좌진 장군을 암살한 범인이 공산주의 계열이었다는 호통을 듣고 부친의 죽음에 대해 확실히 알게된 김두한씨가 그때부터 좌파들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른바 진보좌파계열의 미움을 샀기때문인 측면도 있을것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김두한씨나 그 아버지인 김좌진장군은, 돈이나 물질에 대해 기질적, 생리적으로 도저히 째째할 수 없었던 호걸이었다는 사실이다.
 
▲ 왼쪽김두한씨 가운데가  김을동씨 오른쪽이 김을동씨의 生母 이재희 여사인것으로 알고 있다:민족신문 편집부

 
 
- 덩치나 체격에 비해 여자 손처럼 이쁘고 작은 손의 소유자 였던 천하의 김두한-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천하의 김두한이라면 흔히 체격이나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손과 주먹 또한 어마어마(?)하게 큰 인물이었으려니 할 테지만 , 김두한씨는 의외로 체격에 비해 손은 여자손이라 할 만큼 작고 예쁜 손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게 왜 분명한 사실인가 하면, 위에서 말한 김두한씨의 장남(50대 초반으로 필자와는 오래 전부터 호형호제하는 사이로서 녀석이 덩치는 크고 철딱서니는 좀 없지만 무슨 건달이나 깡패는 전혀 아니다)이 키나 체격이 그 아버지보다는 좀 못해도 110k 정도되는 덩치지만, 체격이나 덩치에 비해 손은 웬만한 여자 손 못 잖게 살결도 매우 부드럽고 예쁜 손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자기 아버지 손 또한 그랬다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야쿠자조직에 부하로 들어가기를 부끄러워 할줄 모르는 한국 깡패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깡패나 폭력배들은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어차피 있을 바에는 기왕이면 좀 진짜로 통도 크고 멋진 깡패들이 있어줘야 그래도 피차가 남사스럽지 않을텐데 , 아무리 올려 잡아도 80년대 이후부터 한국에는 그야말로 돌깡패, 양아치들만 설쳐대고 있을뿐, 협객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건달은 아예 씨가 말라버렸다는 것이고, 이 땅에서 쫌생이같은 돌깡패, 양아치들만 설쳐대게 만든 놈들이 바로 김태촌이니 조양은이니 무슨 부산 칠성파의 이강헌(?)이니 뭐니 하는 조무래기 돌깡패놈들이라는 것이다.(필자는 물론 그 세계를 잘모르지만 김두한의 장남 덕분에- 녀석 자신이 결코 깡패나 건달은 아니지만, 조상 탓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팔도 건달 공인중개사 역할을 할수 있고- 필자도 녀석 덕분에 꽤 잘 나가는 깡패들을 더러 본적이 있다)
 
게다가 더 한심한 것은 벌써 꽤 오래전에 보도된 것 처럼( 부산일대의 칠성파 두목이라는 자가 일본 야쿠자들의 하부조직으로 들어가서 무슨 의식을 하는 사진이 크게 보도 된 적이 있다) 요즘 한국의 건달 내지 조폭이라는 자들은 무슨 애국심이나, 제대로 된 자부심같은 것은 아예 없는 정도가 아니라, 고작해야 일본 야쿠자조직의 하부 조직으로 들어가거나, 무분별하게 연대해서라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 돈벌이나 하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세태라는 것이 국가적, 민족적으로도 시쳇말로 참으로 "쪽팔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뱀발: 쓰다보니 옆길로 빠져버린 느낌이 있으나, 만약 위의 세 사람이 자신들이 잘나가던 시절, 그 유별나고 용맹스러운(?) 자식사랑을 과시하는 바람에 요새 한창 개망신을 당하고 있는 김모씨와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처결 했을 지를 한번쯤 상상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고 유익한 일이 아닐까 싶다...
 
2007년 5월 13일 새벽
 

인터넷 민족신문 발행인: 김 기백
http://www.minjokc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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