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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타는 눈빛을 보라 !
 
박태신 기사입력 :  2010/03/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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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타는 눈빛을 보라 !
글쓴이 : 박태신 날짜 : 10.03.19 조회 : 11


저 불타는 눈빛은 무엇을 말함인가 ! 
 
약산 김원봉 ...............
이제는 잊혀저가는 이름이다.
그는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고독한 영웅이였다.
 
그는 식민지 청년들의 희망이였다.
그는 당시 중국본토에서 조직된 많은 독립운동단체가 미온적이고 온건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서 과격하고 급진적인 폭력투쟁을 목적으로  13명의 동지들과 의열단을  결성하고, 이후 일제의 심장부를 강타한 23번의 폭탄투척를 주모하고 최초의 한국 정규군으로 중국 전역에 그 용맹을 떨쳤던 조선의용대와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이끌었던 두 단체의 수장으로서 임시정부의 군무부장으로서 암담했던 일제 식민지시대, 수백 수천여명 조선 청년들의 가슴에 항일의 의지를 심어준 주인공이 바로 김원봉이었다.

임시정부라는 틀을 유지하고자 하는 김구와  임시정부 무용론을 주장한 김원봉은 조선의용군을 창설하자, 김구도 한국 광복군을 창설한다. 그러나 김원봉은 김구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민족을 위해 김구와 하나가 되기로 결심하고 민족혁명당은 임정에 합류하고, 조선의용대 제 1지대가 광복군에 편입됨으로서 두 세력은 정치적 군사적 통일을 완성한다.

해방 후, 김원봉은 임시정부 요인의 자격으로 귀국하여, 새로운 국가건설의 꿈에 부풀어있던 그를 맞이한 것은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과정에서 그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좌익 쪽인 민전의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던 김원봉에게 탄압이 가해졌다. 그는 노덕술에게 뺨까지 맞는 수모까지 당하게 된다. 노덕술이 누구인가? 친일경찰출신이다... 그는 일제하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러한 상황속에분노하고 좌절했다. 결국 그는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 참석한 뒤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한 김원봉은 1958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 타는 눈빛을 보라....!
오로지...조국독립을 위하는 길이면 그 누구와도 자기의 기득권조차도 가차없이 버렸던 그였다. 영웅대접은 고사하고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빰까지 얻어 맞아야 하는 이 처참한 상황을 과연....저 눈빛은 알았을까....?
 
이제 우리는 사심을 버리고 조국과 민족에게 열정을 받쳤던 이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철없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얼치기 민족주의자로 남아서는 아니된다. 그들이 흘린 피를 먹고 성공한 자들만 기리고 기념하는 것은 생각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제 우리는 영웅대접은 못하더라도 저 빛나는 열정과 순수한 눈빛을 기억하자..................!
  
우리는 이제 더이상 그를 비극 중의 한 사람으로 남게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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